"하루 14개의 일정을 소화하고 귀가하면 아이들 과제 준비가 기다리고 있죠."

한나라당 대변인인 조윤선 의원은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라고 말한다. 로펌 변호사부터 외국계은행 부행장까지 했지만 올해처럼 바빴던 건 처음이다. 지난 4월 비례대표로 당선되자마자 당의 입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그간의 전문성을 발휘,국회 정무위원으로서 입법활동에 앞장섰다. 남성의원이 대부분인 국회에서 '신출내기 여성의원'이라는 편견을 벗기 위해 정신없이 달린 한 해였다.

국회 입성 첫해를 보내는 여성 정치인들의 감회는 남다르다. 이들이 올해 하면 떠올리는 것은 우선 '너무 바빴다'는 것.초선임에도 전문성과 참신성을 앞세워 대부분 굵직굵직한 당직을 맡았기 때문이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주말에도 최소 대여섯개의 논평을 내고 모든 당 활동에 참여하느라 하루 4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주말 이틀간 병원 신세를 졌다. 최근 예산안 심의 때 열흘간 거의 잠을 자지 못해 링거를 꽂고 밀린 휴식을 취했다.

'우먼파워'를 보여주는 이들의 비결은 역시 부지런함이다. 김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17년 당직 생활 동안 한번도 약속을 펑크내본 적이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하다. 박선영 의원도 여야 회담이 있을 때마다 늦는 상대방을 따끔히 질책할 정도로 시간 관리가 뛰어나다. 조윤선 의원은 "깜깜한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하는 만큼 미용실을 갈 시간이 없어 스스로 하는 데 능숙해졌다"며 "친구들에게 SOS를 쳐 메이크업 강습을 들었던 게 큰 도움이 됐다"고 귀띔했다.

남성들에 비해 약점으로 꼽히는 인맥 관리에도 공을 들인다. 조 의원은 '일단 불러주면 무작정 간다'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하루 저녁 모임을 두세차례 옮겨가긴 예사다. 몸은 고달프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자주 봐야 인맥을 넓히겠다는 생각에서다.

'철의 여인'들도 눈물을 가끔 흘릴 때가 있다. 가족을 생각할 때다. 정조 부위원장을 맡은 정미경 한나라당 의원은 "귀가할 때마다 산더미 같은 자료를 집에 가져간다"며 "7살 아들이 엄마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내가 정치 시작한 후 애정표현을 잘 안 해준다"고 서운한 기색이다.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요즘 하는 유일한 집안일은 일주일에 한 번씩 냉장고에서 오래된 음식을 버리는 것"이라며 "가족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니 참아달라'라고 할 때마다 속으론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김영주 인턴(한국외대 4학년)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