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9일 종교편향 문제로 반발해 온 불교계에 머리를 숙였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불교계가 마음이 상하게 된 것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진화에 나선 것이다. 어청수 경찰청장의 기독교 집회 포스터 등장,국토해양부 지리정보사이트인 '알고가'의 사찰 정보 누락 등을 계기로 불교계가 지난 6월25일 성명을 통해 반발한 지 76일 만이다. 불교계는 일단 "성의있는 자세"라면서도 어 청장의 사퇴 등 나머지 요구사항 관철을 요구하고 있어 사태의 근본 해결까진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종교 편향 활동 감시를

이 대통령이 국정현안과 관련해 공개 유감의 뜻을 표명한 것은 '쇠고기 파동' 당시 두 번의 사과에 이어 세 번째다. 직접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서는 이번 불교계 사태를 원만히 수습하고 국정운영에 드라이브를 건다는 계획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유감 표명을 한 후 종교 편향의 오해를 살 수 있는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책 마련 등을 내각에 지시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겐 "(종교 편향 활동을)감시 감독하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무위원들도 관심을 갖고 철저히 교육시켜 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이날 밤 열린 '대통령과의 대화'에서도 "국민의 통합을 위해 불교도 물론이지만 종교 사회 등의 통합을 폭넓게 하겠다.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면 저한테 불찰이 있고 열심히 하겠다"며 종교 편향 방지를 위한 확고한 의지를 강조했다.

◆정리 국면으로 가나

불교계는 일단 "모든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대통령의 유감 표명을 수용할 수 없다"며 추석 이후 지역별 범불교대회 강행 등 강경 방침을 고수했다. 그러나 불교계가 요구한 '4대 조건'의 최대 쟁점인 '대통령 사과'가 사실상 관철된 만큼 향후 정부와 불교계의 협의 결과에 따라 이번 사태는 정리 단계로 들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종교편향 종식 범불교대책위장 원학 스님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사과ㆍ경찰청장 파면ㆍ종교편향 근절 입법 조치ㆍ시국 관련 국민 대화합 조치 등 4가지 요구 조건 중 어느 하나라도 관철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지만 톤은 이전에 비해 훨씬 부드러워졌다.

우선 이 대통령이 유감 표명 발언 중 "일부 공직자들에 종교 편향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언행이 있어서"라고 한 데 대해 원학 스님은 "대통령 자신이 종교편향을 지시하거나 강조하는 의도는 없었다는 뜻이지 공직자의 종교편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어 청장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사퇴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정부 대신 어 청장 쪽으로 화살을 돌렸다. 따라서 정부와 불교계가 추석 이전까지 나머지 문제에 대해 얼마나 진전된 결과를 이끌어내느냐가 종교편향 사태의 지속 여부를 가름할 전망이다.

홍영식/서화동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