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신고.불능화 vs 대북 적대정책 폐기

4개월만에 재개되는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의 백미로 평가되는 북.미 양자회담이 17일 베이징(北京) 주재 미국 대사관에 열렸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베이징 도착 후 첫 일정으로 북.미 회동을 가졌다.

두 사람의 만남은 비핵화 2단계 조치인 핵시설 불능화와 핵프로그램 신고 절차가 순항할지 여부를 예측하는 풍향계가 될 전망이다.

◇25일만의 만남..무엇을 논의했나 = 두 사람은 지난 달 21~22일 힐 차관보의 평양 방문 이후 25일만에 재회했다.

두 사람은 미국 대사관에서 양자협의를 한 데 이어 장소를 옮겨 한국 대표단 숙소로 활용되는 호텔(중국대반점)로 이동해 오찬까지 함께 했다.

그만큼 밀도있는 협의를 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만남에서는 우선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와 연내 핵시설 불능화, 그리고 이에 대한 정치적 상응조치가 될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대 적성국교역법 적용 중단 문제를 집중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두 사람은 지난 3월 뉴욕에서 진행된 1차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나눈 터다.

따라서 영변 핵시설이 폐쇄되는 등 상황이 보다 진전된 만큼 두 사람은 이번에 '속깊은 얘기'를 교환했을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특히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시간을 많이 허비한 만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측이 해야할 일들을 집중적으로 점검한 것으로 보인다.

협의 주제는 북한이 이행할 핵시설 불능화의 수준, 이행시한, 미국이 이행할 상응조치인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및 대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 등의 세부 현안이다.

아울러 핵프로그램 목록 신고의 최대 쟁점인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도 당연히 중요 협의 안건으로 다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 핵심쟁점 = 두 사람의 협의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현안은 역시 HEU 문제와 불능화의 개념을 '합치'시키는 문제이다.

최근 들어 농축우라늄프로그램(UEP) 문제로 많이 불리기도 하는 HEU 문제와 관련, 북한과 미국이 이미 충분히 입장을 밝힌데다 영변 핵시설 폐쇄가 단행된 시점이어서 두 사람은 이 문제와 관련해 보다 깊은 얘기를 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힐 차관보는 전날 서울에서 "HEU 문제에 대해 북한이 설명해야 할 정보가 있다"면서 "북한이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 문제를 다루겠다고 했으니 지켜보자"고 했다.

그런 만큼 힐 차관보는 이날 북한이 구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원심분리기 등 우라늄 농축 관련 장비들의 구입 경위 및 용처 등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점을 북 측에 강조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대해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 지가 관심이다. 북한은 이전에 HEU프로그램의 존재를 전면 부인하면서 "증거를 제시하면 설명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특히 힐 차관보의 지난 달 방북 등을 계기로 북한이 HEU 문제와 관련해 과거에 비해 다소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이날 협의에서 '보다 진전된 입장'을 밝혔는 지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원심분리기 등의 구입 경위 및 사용처에 대해 설명하고 핵무기 제조 목적이 아닌 단순 연구용 목적이었다는 취지의 해명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이처럼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HEU 문제는 순항할 수 있지만 종전처럼 부인 취지로 일관하면 2단계 협의는 초반부터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양측은 이와 함께 불능화의 수준을 두고 `일합'을 겨뤘을 가능성이 높다.

2.13 합의에 명확한 개념규정이 돼 있지 않은 불능화는 `폐쇄에 근접한 것에서부터 폐기 단계와 다를 바 없는 단계'까지 선택지가 수도 없이 많은 애매한 부분이다. 힐 차관보는 `중유 95만t에 더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을 얻기 위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불능화를 해야한다'는 입장을 강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번 만남에서 북한이 큰 애착을 갖는 경수로 문제나 군사회담 개최 문제 등이 거론됐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두 사람의 협의 내용은 이번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이 어떤 결과를 도출할 것인지와 직결된다.

현지 외교소식통들은 "일단 두 사람이 첫 만남을 가진 만큼 너무 성급한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내일부터 수석대표회담이 열리면 보다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쟁점 현안에 대한 접근이 다각적으로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의장국 중국은 18일 수석대표회담이 열리면 간단한 의전행사를 가진 뒤 곧바로 현안 토론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