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생산량 정부 448만t, '좋은 벗들' 280만t
WFP 추정 정상배급기준 90만t 이상 부족‥변형된 기아사태 불가피


춘궁기(3∼5월)를 앞두고 북한에 극심한 식량난이 다시 도래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한 가운데 식량난의 심각성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와 민간단체, 국제기구 등이 자체 분석한 결과에서는 커다란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지만 낙관적인 추정에 무게를 둔다고 해도 북한의 식량난은 예사롭지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농촌진흥청을 통해 지난해 북한의 기상과 병해충 발생 현황과 비료 등 농자재 공급사정 등을 종합해 지난해 북한 내 쌀, 옥수수, 보리, 감자, 콩 등 곡물 총생산량이 2005년 454만t에 비해 1.3%(6만t) 감소된 448만t으로 추정했다.

이에 비해 대북 인권단체인 '좋은벗들'은 도별 생산량(189만t), 개인 소토지 생산량(30만t), 농민 보유량(10만t), 교화소 및 관리소 생산량(15만t), 예비곡물(5만∼6만t), 이모작 생산량(30만t) 등을 모두 합해도 평년작 수준인 430만t에도 훨씬 못 미친 280만t에 그친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을 보인 세계식량계획(WFP)도 지난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430만t에 그쳐 '정상배급기준' 520만t에서 90만t 이상 부족할 것이라며 '혹독한 춘궁기'를 예상해 낙관적인 추정에 무게를 둘 경우도 사태가 심각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정부 자료를 바탕으로 전체 수요량에서 자체 생산량과 외부도입량을 뺀 부족량도 2000년 61만t, 2001년 114만t, 2002년 124만t, 2003년 105만t, 2004년 138만t, 2005년 96만t 등에 이어 지난해에는 '최악 상황'인 155만t으로 분석됐다.

이같은 통계적인 추정 이외에 북한의 식량사정을 간접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지표나 최근 방북자나 탈북자 증언에서도 1990년대 '고난의 행군'과는 또 다른 양상의 식량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전문 인터넷매체인 '데일리NK'는 지난달 초 북한 쌀값이 북부지역에서 비교적 비싼 곳인 청진이 1천원에 달했으나 신의주 850원, 강동군 750원 등 분포로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좋은벗들도 쌀(1㎏)의 경우 지난해 10월 이후 1천원대에 머물다 12월에는 청진과 혜산 등 일부 지역에서 1천100원대로 오르긴 했으나 지난달까지는 큰 변동이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좋은벗들 관계자는 "예년에는 추수 이후에 공급이 늘어 쌀값이 떨어지곤 했으나 지난해 말에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은 점이 주목된다"면서 "3월이 가까와지면서 쌀값이 큰 폭으로 오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까지 곡물가격 대체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데 대해서는 ▲간부들의 군량미 등 정부 비축식량 일부 불법 시장 유출 ▲주민들의 쌀을 비롯한 식량 구매력 저하 ▲주민들 자체 식량 보유분 사용 등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북한 전문가는 "정부 양곡창고에 있는 식량들을 북한 관리들이 빼돌려 시장에 내다 파는 양이 상당부분"이라면서 "비축량이 80%를 웃돌던 군량미의 경우도 지난해 가을 수확기 직전에는 50% 밑으로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가족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는 탈북자는 "북한에서는 배급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부족한 식량을 장마당에서 구입하려 해도 돈이 없어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라며 "주변 탈북자들 중 돈이 조금만 여유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북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주는 것이 일상화 돼있다"고 전했다.

곡물가격 안정세가 정부 비축분의 비정상적 유출이나 주민들의 구매력 저하 등이 주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을 경우는 현재 북한 내부 식량사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을 내비친 대목들이다.

고질적인 식량난에 대한 주민들의 대처능력이 향상됐고 재일교포나 탈북자의 북한 가족에 대한 필사적인 '구명 지원', 북한 곳곳에 퍼진 장마당과 암시장 등이 식량난 충격을 완충시킬 수 있으나 절대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변형된' 기아사태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한 양상으로 치달을 지 여부는 지난해 7월 미사일 발사 이후 중단된 남한의 쌀.비료 지원 재개가 중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쌀 지원분 50만t은 기아선상에 놓여있는 북한에는 곧바로 '구호식량'이 될 수 있어 이달 속개될 예정인 6자회담 결과와 남북관계 진전에 따른 대북 쌀.비료지원 재개 여부가 기아사태의 향배를 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측이 지원해온 쌀 50만t은 상당히 큰 양이며 북한 입장에서는 남측으로부터 식량을 지원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어린이, 노인, 임산부, 병자 등 탈북할 힘도 없고 취약한 계층은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기자 h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