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마침내 '4년 연임제 개헌카드'를 꺼내들었다.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의하고 임기단축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예고된 수순이다.

대선과 총선,지방선거가 불규칙하게 이어지는 데 따른 고비용 정치구조를 타파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민심이 완전히 등돌린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정치적 승부수라는 데 별 이의가 없을 것 같다.

특히 한나라당이 반대하면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아는 노 대통령이 전격 제의한 데는 개헌정국을 유도,한나라당 독주와 여당의 지리멸렬로 압축되는 현 정치판을 일거에 흔들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현행 헌법이 1987년 개헌 이후 20년간의 급속한 시대적 변화를 담지 못하고 있는 데다 임기 말 국정이 표류하는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정통성 있는 문민정부였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모두 임기 말 심각한 레임덕에 시달리는 등 안정성을 상실했던 게 사실이다.

4년 연임제로 가면 대통령이 중간평가라는 과정을 거칠 수 있어 국정의 책임성을 높일 수 있다는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된 상태다.

여야 주자 모두가 대통령 4년 연임제 또는 중임제 개헌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이유다.

문제는 시점이다.

누가 봐도 한나라당이 연말 대선의 유리한 고지에 올라있고 여당 내에서는 노 대통령이 반대하는 신당 창당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터에 불쑥 카드를 던졌다는 점에서 정치적 저의를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개헌카드를 들고나온 데는 적어도 두 가지 정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국가적 이슈를 선점해 정국의 한복판에 섬으로써 임기 말 레임덕을 차단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임기 끝까지 권력을 행사하겠다"며 정국 주도의지를 밝힌 것의 연장선상이다.

개헌의 실현 여부를 떠나 의견수렴 과정과 국회 논의 및 의결 등 개헌절차에만 3개월여가 소요된다는 점에서 적어도 올 봄까지는 레임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다.

이와 함께 현 대선구도를 근본적으로 흔들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노 대통령 입장에선 '빅3의 고공행진' 등 한나라당의 독주나 자신이 반대하는 여당의 신당추진 모두에 제동을 걸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현 정치지형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자신의 뿌리인 열린우리당은 공중분해되고 12월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겨줄 가능성이 높다는 위기감에서 기존 정치이슈를 일거에 묻어버릴 '핵폭탄급' 히든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지지율 10%대의 노 대통령 입장에선 손해볼 게 없는 게임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음직하다.

어차피 개헌문제는 사안의 속성상 여론이 갈릴 수밖에 없다.

대대적인 여론몰이를 통해 여론의 지원을 얻는 데 성공한다면 개헌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되고,설령 실패하더라도 후속 카드를 위한 명분을 쌓는 동시에 이 과정에서 지지율 제고라는 부수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노 대통령이 공언했듯이 정치의 중심에 선 차원을 넘어 사실상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든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