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절절히 한국인이었고 바쁜 공무원이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10일 37년간의 한국 공무원 생활을 마쳤다.

올해 예순 둘이다.

공무원 나이로 정년을 꽉 채웠지만 퇴직은커녕 내년 1월 뉴욕에서 최소 임기 5년의 유엔 사무총장으로 새출발한다.

이날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열린 반 장관 이임식은 침통하기 십상인 여느 장관 이임식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하지만 반 장관은 영전을 축하하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지난날을 회고하며 "떠나려니 어쩔 수 없이 허전하고 쓸쓸하다"고 말했다.

그는 "몇 차례 좌절이 있긴 했지만 제가 보기 드물게 성공한 공무원이라는 말은 부인할 수 없다"고 자평하고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한 것은 전 국민이 건국 이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이룬 업적이 국제사회에서 평가된 결과이니 저 혼자 노력한 게 아니라 한국이라는 총체적 브랜드에 제 이름 석 자를 얹었다"고 말했다.

2년10개월간의 장관직 수행에 대해서는 9·19 공동성명을 탄생시키고 개도국들과의 관계를 개선해 외교 다변화를 이룬 일을 '자랑거리'로,북핵 문제를 수습하지 못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미결로 남겨둔 것을 큰 아쉬움으로 꼽았다.

정치권을 향해 뼈 있는 말도 남겼다.반 장관은 "최근 일어난 일련의 일들로 다들 아시겠지만"이라고 운을 뗀 후 "외교는 국가와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고 일부 유권자의 이해 관계와는 구별돼야 한다"고 강조한 뒤 "외교 당국은 국민의 비판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참여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한.미 동맹 이슈가 정치 공방으로 비화된 것에 대해 정치권의 포퓰리즘 때문에 외교가 좌지우지돼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밝힌 대목으로 풀이된다.

그는 "북한과의 대치관계라는 한계 때문에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 제약을 받지만 국제 사회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중심을 잡고 나아가야 세계 속의 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는 15일 사무총장직 인수를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