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 참석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4일 "독일은 국가의 이름으로 전쟁에 나가 이웃의 고통을 준 사람들에 대해 일체의 추모시설을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현지시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역내 공동체 발전을 위한 과거사 반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유럽연합(EU) 통합과정을 예로 들어 "독일은 일부 영토까지 포기할 정도로 역사인식을 철저히 청산했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전했다. 이 같은 언급은 한국, 중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다수 국가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매년 강행하고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태도를 우회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EU 통합은 그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결코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고, EAS도 그 방향으로 갈 것"이라며 "독일, 프랑스는 EU 통합과정에서 헤게모니, 패권경쟁을 철저히 절제하며 헌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동아시아 정상회의 창설까지 여러 노력이 있었고, 그 과정의 핵심은 과거 질서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 기초하고 있다"며 "화해, 공존, 평화번영의 목표 아래서 서로 이해하고, 과거 역사 속에 존재하는 적대감이나 불신 해소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고, 그 바탕위에서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EAS 회원국 확대 문제와 관련, 노 대통령은 "이 지역의 평화 번영, 질서 유지에 기여하는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문호 개방 원칙을 밝힌뒤 "러시아가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으나 어느 때인가 북한도 이 대화 테이블에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며 북한의 EAS 참여 희망 의사를 밝혔다. 이날 동아시아 정상회의는 북핵 문제와 관련, 제4차 6자회담의 '9.19' 북핵 공동성명 채택을 환영하며, 북핵문제가 평화적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돼야 한다는데 적극 지지하고, 이같은 내용을 별도의 '의장성명'에 포함시켰다. 이날 회의는 EAS 발전 비전을 담은 '쿠알라룸푸르 정상선언문'에 서명했고, 구체적 협력사업의 하나로 조류 인플루엔자(AI) 예방통제를 위한 별도의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와 함께 각국 정상들은 러시아의 정식 EAS 가입 신청에 대해 "러시아의 희망을 유념키로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고위관리회의(SOM)에서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성기홍 김범현 기자 sgh@yna.co.kr kbeom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