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의 두번째 국정감사가 3주간의 일정을 마치고 오는 11일 막을 내린다. 올해 국감은 사상 첫 `게이트 없는 국감'으로 불릴 정도로 정치국감의 사양화와 정책국감으로의 선회 추세를 확연히 보여줬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폭로와 정쟁이 현저히 줄어든 대신 정책지향 감사가 틀을 잡아가면서 1988년 제도부활 이후 가장 `국감 다운' 국감이라는데 정치권에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번 국감은 정책국감으로의 `가능성'과 동시에 `한계'도 확인시켰다. 성역화된 삼성 소유.지배구조 문제를 재조명하고 민생정책의 `실정'을 예리하게 짚어내는 성과가 부분적으로 돋보였지만 입법과 예산심의로 까지 이어지는 `선굵은' 감사시스템이 자리잡기 까지는 아직 갈길이 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삼성국감' = 폭로와 정쟁이 퇴조한 올해 국감의 키워드는 단연 `삼성'이었다.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개정,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증인채택, 삼성자동차 채권 손실보전, 에버랜드 편법증여 의혹, X파일 사건 등 삼성을 매개로 한 이슈들이 일거에 분출, 이른바 `삼성국감'이라는 조어를 낳았다. 포퓰리즘식 `삼성 죽이기'라는 비판론도 나왔지만 논의자체가 조심스러웠던 국내 대표 재벌그룹의 소유ㆍ지배구조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금산법 개정은 올해 국감기간을 관통하는 핵심이슈로 꼽힌다. 삼성 소유ㆍ지배구조에 메스를 들이대는 금산법 개정문제는 `삼성 봐주기' 논란을 증폭시키며 재벌개혁 정책에 관한 당.정.청간의 극명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사상 첫 이건희 회장의 증인 채택은 삼성국감의 `백미'였다. 물론 이 회장이 신병치료를 이유로 출석을 거부하기는 했지만 증인채택 만으로도 재벌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기류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가 컸다는 평가다. ◇ `월척' 민생감사 = 삼성국감의 한켠에서는 국민생활과 직결된 주제로 `월척'을 낚은 사례가 돋보였다. 정책국감의 `착근'을 실증적으로 확인시켜줬다는 긍정적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인터넷 민원서류의 위.변조 가능성을 제기한 한나라당 권오을(權五乙) 의원과 중국산 김치의 높은 납 함유량을 밝혀낸 같은 당 고경화(高京華) 의원은 단연 주목할만한 국감인물이었다. 로또복권 당첨확률 조작가능성을 제기한 한나라당 김재경(金在庚) 의원, 고(故)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 국가반환 결의문 채택을 주도한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 등은 민생의 가려운 곳을 긁어낸 감사활동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 `수준' 떨어지는 감사 = 그러나 내실있는 정책국감이 되기에는 전반적으로 `수준'과 `질'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기초적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질의를 되풀이하거나 피감기관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잘못 분석하고 기본용어조차 혼동해 발표하는 `준비안된 아마추어리즘'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 우리당 홍미영(洪美英) 의원은 이원종 충북지사를 안기부 불법도청 연루의혹이 있는 김영삼(金泳三) 정부시절의 이원종 정무수석으로 착각한 자료를 내 빈축을 샀고 한나라당 이종구(李鍾九) 의원은 이해찬(李海瓚) 총리를 1가구 2주택자로 주장한 것이 오류로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피감기관의 불성실 자료제출과 답변태도가 `부실국감'의 보다 큰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과거와 달리 국감 지적사항을 기민하게 수용하는 자세도 엿보였지만 근거없이 자료제출을 거부 또는 누락시키거나 심지어 고압적인 태도로 나오면서 의원들의 극심한 반발을 샀다. 법사위의 `대구 술자리 파문'은 또다시 구태의 극치를 보이며 정책국감의 취지를 퇴색시킨 오점으로 기록됐다. 외교통상위 국감에서는 `쌀 비준안' 상정을 놓고 민주노동당이 회의장을 점거, 농성하하는 등 파행을 겪기도 했다. 올해 국감의 또 다른 특징은 세간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이벤트 국감'이 선보였다는 점. 문광위의 `한복국감', 산자위의 `촛불국감'이 대표적이다. 이는 딱딱한 국감 이미지를 벗고 국민들에게 한걸음 다가서는 긍정적 측면도 있었지만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친 `보여주기' 행사라는 비판을 사기도 했다. ◇ `제도 손질' 움직임 = 이번 국감은 정책국감으로 한발 더 다가서기 위한 제도적 개선을 과제로 남겨뒀다. 무엇보다도 감사의 효율성 확보 차원에서 피감기관의 불성실 자료제출과 증인.참고인의 불출석 및 위증에 대한 제재수위를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미 여야 일각에서는 국감기간 정당한 사유없이 불출석한 경우 국감이 끝난 뒤 일정기간을 정해 청문회를 실시하고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가중처벌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20일로 제한된 국정감사 기간을 일정기간 연장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피감기관과의 술자리 파문을 계기로 국회의원 윤리강령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불거지고 있다. 정치권 내에서는 국감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도 급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정조사와 상임위 활성화로 국감을 대체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상시국감' 논의가 공론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