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안기부 불법 도청테이프의 무더기 발견을 계기로 `X파일' 사건의 파장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여야 정치권은 31일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문제의 테이프에 무슨 내용이 담겨있을 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미 언론에 공개된 `1호 테이프'가 정국을 메가톤급 충격에 빠뜨릴 정도의 위력을 가졌던 점으로 미뤄볼 때 새로 발견된 274개는 그야말로 정치권의 지축을 뒤흔들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정가를 휘감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도청시점이 YS(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기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자산과 부채가 현 정치권에 직.간접적으로 `승계'돼있다는 점에서 여야 가릴 것 없이 X파일 후폭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테이프 내용을 둘러싸고 "어느 기업을 협박해 돈을 뜯어냈다더라" "유력 정치인의 여자얘기가 나온다더라" "누가 양다리를 걸쳤다더라" " 시민단체나 노조의 도청내용이 많다더라"는 추측성 얘기가 나돌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겉으로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공식.비공식 정보망을 풀가동, 테이프 내용을 `탐지'하려고 촉수를 세우는 표정이었다. 우리당 이은영(李銀榮) 제1정조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정치인들의 여자문제와 간통사건, 또는 양다리 걸쳤다거나 기업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내용 등이 들어있지 않겠느냐"고 추측하고는 "두다리를 쫙 뻗고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특히 "이번 사건으로 정치인 뇌물 문제가 드러난다면 (정치권에) 제2의 빅뱅과 물갈이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기 까지 했다. 우리당의 한 A의원은 "우리당은 초선의원들이 많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다만 공작정치에 관련된 것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선거와 관련해 기업들을 끌어들이고 정치자금을 어떻게 강제해서 받아내느냐 하는 것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신(前身)인 신한국당이 YS 당시 집권당이었던 한나라당은 곤혹스런 표정속에서 테이프에 담긴 내용을 파악하느라 부심했다. 한나라당은 다만 압수된 테이프에 여당과 관계된 부분이 빠져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정치적 악용 가능성을 경계했다. 임태희(任太熙)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림팀장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테이프인 만큼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에게 돈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변조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하고 "일단 압수된 테이프의 축소.재편집된 부분은 철저히 조사하고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朴槿惠) 대표의 한 측근은 "검찰이 (테이프를 변조하는 등의) 장난하는 것은 용납이 안된다"면서 "검찰이 보안을 지킨다해도 문제는 다른 데서 샐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당은 문제의 테이프에 DJ(김대중 전대통령)가 연루된 내용이 담겨있을 개연성이 있다는 점 등으로 "괴롭다"는 표정 속에서 관련 정보를 탐지하는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김경희 기자 rhd@yna.co.kr kyung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