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사건으로 날로 점증하는 국제테러단체의 위협에 대응하는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한마디로 낙제점 수준이다. 지난해 11월 이후 3차례나 한국인이 이라크에서 피살되거나 억류됐는데도 이를 거울삼아 문제점을 개선하지 못했다. 정부는 피랍사실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21일 오전 4시40분부터 피살보고가 올라온 22일 오후 11시까지 40여시간동안 김씨 석방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슨 노력을 기울였는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심한 정보파악 능력 정부는 22일 오후 이라크에 진출한 한국 경호업체인 NKTS의 최승갑 사장을 비롯 열린우리당의 윤호중·김성곤 의원 등이 김씨의 생존을 뒷받침하는 발언을 내놓자 낙관론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최영진 외교부 차관은 이날 밤 10시 외교부 상황실을 들른 노무현 대통령에게 "어두운 정보와 밝은 정보가 뒤섞여 들어오는데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보고할 정도였다. 외신과 현지교민들에 따르면 이미 이날 오후 6시부터 심상찮은 비관론이 확산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정보 수집 능력 부재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발언으로도 확인된다. 반 장관은 23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김씨의 피랍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뒤 김씨를 납치한 테러단체가 어디에 있는,어떤 단체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랍 여러 나라의 외상들과 만나거나 전화를 통화해 몇가지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고 말했다. ◆실제 교섭은 있었나 피랍 사실이 알려진 21일부터 외교부는 '테러단체와의 접촉루트는 마련됐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라크 종교단체,미군 임시행정처(CPA),다국적군사령부(MNFC),이라크 외교부를 통해 협조를 구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것은 진행 중이라 밝히기 어렵다"고 일관해왔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외교통상부는 22일 오전 열린우리당 국방·통일외교 분과위 소속 의원과 가진 연석간담회에서 "아직까지 이라크 무장단체와의 직접 채널은 확보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김씨를 구출하기 위한 구체적인 협상이 진행됐는지도 의문이다. 이와 관련,외교부 관계자는 "보안상의 이유 등으로 교섭 진행 과정 등을 공개할 수 없다"며 "앞으로 기회가 되면 이라크 종교단체 등 교섭한 단체의 명단과 내용을 밝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건이 참극으로 종결된 23일 반 장관은 "김씨를 납치한 단체는 처음부터 살해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며 "지난번에 납치된 일본인의 경우 이라크내 저항세력인 무자헤딘이어서 성직자들을 통해 석방에 성공했으나 이번에 김씨를 납치한 조직은 알카에다와 연계된 조직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라크에서 이미 3번이나 한국인이 피격·피랍됐는데도 비공식루트가 개척되지 않았다는 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있다. ◆교민관리 허점투성이 정부는 지난 4월 이라크 지역을 '특정지역'으로 지정하고 국민들의 방문을 위해서는 사전에 허가를 받도록 하는 등 만약의 사건에 대비해 왔다. 그러나 정작 현지 공관에서는 미군에 납품을 하는 업체 직원인 김선일씨의 실종을 업체쪽에서 신고하기까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라크파병 결정으로 우리 국민이 이라크 테러단체의 표적이 될 수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라크 공관이 교민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면할 길이 없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