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44돌을 맞이하는 정치권은 어느 해보다 썰렁하다. 4.19 혁명의 주역들이 정치권에서 대부분 `퇴출' 당하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44년전 `열혈청년'으로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당당히 목숨을 걸었던 60대 중반의 `혁명가'들도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세대교체와 정치권 물갈이라는 `국민혁명의 바람'앞에선 예외가 아니었다. 4.19세대의 퇴조는 이미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정치권 세대뛰어넘기 양상을 보이며 50대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어느 정도 예고됐다. 또 17대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이 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에 이런 시대적 흐름은 그대로 반영됐다. 현역의원중 가장 대표적 4.19세대로 4.19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맡고 있었던 열린우리당 이우재(李佑宰) 의원은 당내 경선에서 노동운동가 출신인 이목희(李穆熙)씨에게 패해 총선 출전권을 내줬다. 4.19 당시 중동고 3학년생으로 고교생 시위를 주도했던 열린우리당 설송웅 의원도 이번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 때 정치권의 4.19세대 상징으로 통했던 이기택(李基澤)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 패배한 뒤 대선과정에선 노 대통령을 도와 정치적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지 관심을 모았으나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한나라당내 대표적 4.19세대로 16대 총선에서 낙선했던 이세기(李世基) 김중위(金重緯) 전 의원은 와신상담 끝에 권토중래를 꿈꾸며 공천을 신청했으나 당 공천심사위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며 공천배제라는 `수모'를 당했다. 박범진(朴範珍) 전 의원도 지난 대선 때 `국민통합 21'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재기의 몸부림을 쳤으나 정몽준(鄭夢準) 의원의 후보사퇴로 좌절을 맛본 뒤 정계를 떠났다. 4.19세대 현역 의원 중 이번 총선에 유일하게 도전했던 민주당 유용태(劉容泰) 의원은 지역구인 서울 동작을에서 `3위'를 하는데 그쳐 정치적 휴지기를 맞게 됐다. 이번 총선에선 4.19세대 뿐만아니라 4.19세대와 일부 겹치는 6.3세대(64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반대운동 세력)들도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열린우리당 김덕규(金德圭) 의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치일선에서 멀어졌다.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은 이미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열린우리당 정대철(鄭大哲),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하순봉(河舜鳳), 박명환(朴明煥) 현승일(玄勝一) 의원은 총선 출마를 포기하거나 출마자체가 좌절됐다. 또 열린우리당 이부영(李富榮), 한나라당 현경대(玄敬大) 김원길(金元吉), 민주당 이 협(李 協) 김경재(金景梓) 의원 등은 낙선의 쓴잔을 마셨다. (서울=연합뉴스) 김병수 기자 bing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