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전은 한마디로 '바람과 감성'의 선거였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따른 여권의 '탄핵풍'과 한나라당의 '박근혜 바람'이 정면 충돌했고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으로 돌발한 '노풍(老風)'이 표심을 흔들었다. 바람을 앞세운 '탄핵심판론'과 '거여견제론'이 선거운동 기간 내내 선거전을 압도했고, 수시로 바뀌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선거 판세도 요동쳤다. 바람과 감성 정치에 치우치다 보니 자연 유권자의 판단기준이 돼야 하는 정책은 철저히 뒷전에 밀렸다. 정책 실종 선거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 바람선거 =바람에서 시작해 바람으로 끝난 선거였다는데 이견이 없다. 선거 초반 노 대통령 탄핵에 따른 역풍이 거세지면서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50%대로 치솟았고 이 때만 해도 "선거는 해보나마나"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여당의 탄핵역풍이 선거 중반까지 이어지면서 2백석 석권 얘기까지 나왔고 이는 야당의 '거여 견제론'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바람'을 토대로 '거여견제론'을 앞세워 대구 경북에서 대세를 장악했고 이어 부산ㆍ경남은 물론 수도권으로까지 확산시키는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노풍'이 결정적인 촉매제 역할을 했다. 야당의 견제론 바람이 표심을 흔들면서 선거막판 두 당 간의 격차가 좁혀졌다. 급기야 여당이 다시 '탄핵카드'를 꺼내들고 '거야부활론'을 제기하기에 이르렀고 여당의 선대위원장이 선거를 불과 이틀 앞두고 사퇴하는 사태를 맞았다. 각당은 바람을 타기 위해 정책 대신 감성 선거에 치중했다. 선거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당 지도부와 후보자의 단식, 삭발, 천막당사 이전, 3보1배 등이 이를 함축한다. TV광고에서도 한나라당이 매맞는 장면을 담은 것이나 민주당이 추미애 선대위원장의 3보1배하는 모습을, 열린우리당이 본회의장 탄핵안 가결 장면을 담은 것은 모두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람선거 속에서 여야의 정책과 공약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그나마 공약도 표를 의식한 임기응변식 공약이 주를 이루었다. 현실성 없는 '공약(空約)'도 적지 않았다. ◆ 미완의 새로운 선거풍토 =이번 선거는 과거 선거에 비해 깨끗한 선거란 평가를 받고 있다. 선거때마다 되풀이됐던 '돈선거' 행태는 '50배 포상제' 등 정부의 강력한 청산 의지로 상당부분 해소됐다. 물론 막판 금품살포 등이 잇따르는 등 깨끗한 선거정착이라는 말이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당연설회와 합동연설회를 폐지하는 대신에 도입된 미디어 선거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노출했다. 유력후보가 TV토론에 불참하는 바람에 토론이 잇따라 무산, 유권자의 알 권리가 무시되는 사례가 적지않았다. 또 흑색 선전과 비방전도 여전했다. 각 당 지도부에서 후보에 이르기까지 상대당을 원색적으로 공격하고 흠집내는 구태가 되풀이됐다. 인터넷이 특정 정당과 후보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지나친 선거운동 규제가 상당수 유권자로 하여금 자기 지역의 출마 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의 무관심을 유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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