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국회는 말 그대로 `직무유기 국회' `후안무치 국회' 였다. 16대 국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임시국회에서 최대 현안으로 다뤄져온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처리가 또 다시 미뤄졌고, 이라크 파병 동의안은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반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정동영(鄭東泳) 의장에 대한 경선자금 수사촉구결의안과 한화 등으로부터 거액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의원 석방동의안은 일사천리로 가결됐다. 때문에 국가 중대사는 제대로 처리되지 않거나, 선거를 앞둔 표심에 밀려 뒷전으로 제쳐놓으면서 `제식구 감싸기'와 정쟁만이 횡행했다는 비판론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FTA 파병안 처리가 세번째 시도에서 마저 무산된 것은 국가신인도 면에서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만만치 않다. 물론, 박관용(朴寬用) 의장이 이날 표결을 강행하지 않은 것은 전자투표든 기명투표든 이날 표결을 실시할 경우 동의안이 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에 기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회가 FTA 비준안의 본회의 처리를 세차례나 시도했음에도 결론을 내지못한데다 사안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투표방식을 둘러싼 논란으로 표결이 무산된데대한 비판은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기명투표 방식으로 갈 경우에는 비준안이 가결된다고 해도 지역구 유권자들에게자신이 비준안 저지에 앞장섰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변명할 여지를 만들려는 `선거용'이 아니겠느냐는 관측에서다. 각당 지도부와 경제전문가들은 농촌출신 의원들의 물리적 저지에 의한 두차례의처리무산에 이어 또다시 절차상의 문제로 인해 처리가 지연되면서 국가위상과 경쟁력 손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경제전문가들은 한국과 칠레 양국 정부가 자유무역협정에 서명한지 1년이넘은데다 칠레 상원이 지난달 22일 비준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상황에서 한국 국회가 공언했던 2월 9일 국회처리가 무산되면서 정부와 국회 모두의 신뢰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국회 관계자들은 농촌출신 의원들의 반발강도가 많이 완화된 만큼 내주 국회 처리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16일에도 처리가 안될 경우에는 16대국회 임기내 처리조차 불투명해지면서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에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최이락기자 choinal@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