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5일 측근비리 특검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원내 1당인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반 국민적, 반 의회적 결정'이라고 강력 반발하면서 국회등원을 거부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하야 투쟁을 강도높게 전개키로 함에 따라 정국은 급속히 파행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특검은 검찰이 수사를 회피하거나수사결과가 미진했을때 예외적으로 보완 보충이 허용되는게 사리"라면서 "검찰수사는 국회 다수당의 횡포로부터 보호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재의 요구시 국회 절대 다수당과의 관계가 불편해지고 국민에게 우려를 드려 정치적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면서도 "그러나 이번 사건 처리는 국법질서 운영의 나쁜 선례를 남겨선 안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국회에서 재의결되지 않거나 검찰수사가 끝나면 특검법의일반적 원칙과 절차에 따라 이번 특검법안의 취지를 살리는 새로운 특검법안을 제출,다시 국회와 국민의 판단을 받도록 하겠다며 `조건부 특검거부'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이 국회의 특검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지난 7월 22일 대북송금 제2특검법안에 이어 두번째다. 이에 따라 국회로 되돌아온 특검법은 국회에서 재의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한나라당이 재의 추진을 포기함에 따라 16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5월29일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민주당의 대표 경선결과 및 신행정수도건설특위 구성안 무산에 따른 당내 충청권 의원과 자민련의 반발이 누그러질 경우 한나라당이 특검법안을 전격 재의에 붙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주목된다. 노 대통령의 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한나라당은 이날 주요당직자.비상대책위 연석회의를 가진데 이어 오후 긴급 의원 총회를 소집해 이날부터 예산안.법안 등의안심의를 거부하고 국회에서 농성에 돌입키로 했다. 한나라당은 차후 등원거부 및 장외투쟁, 노 대통령 하야투쟁, 대통령 탄핵소추추진, 의원직 총사퇴 등 단계적으로 투쟁수위를 높여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청(靑)-야(野) 대치국면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정국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당장 새해 예산안을 비롯해 국가균형발전 3대 특별법,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동의안 처리 등 산적한 민생현안에 대한 국회에서의 심의 및 처리가 사실상 중단돼 입법부 기능 마비 및 국정공백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16대 총선을 불과 4개월여 남겨 놓은 시점에서 한나라당이 의원직 총사퇴와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는데 대해 당내 수도권 및 소장파 의원들이 반발 조짐을 보이고 있고, 향후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등과 맞물려 정치권의 대대적인 지각변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한나라당 박 진(朴 振) 대변인은 논평에서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의회정치에 대한 부정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라며 "특검법 거부로 인해 초래될 국정파탄과 국가혼란의 책임은 전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나라당은 오후 부터 국회의 각 상임위나 특위의 안건심의에 일절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김성순(金聖順) 대변인은 "국회에서 압도적인 다수로 결정한 특검을 거부하는 것은 국민의 뜻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도 "극한투쟁은 국정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시대착오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이평수(李枰秀) 공보실장은 "입법.사법.행정부가 3권분립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한 헌법정신과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내린 당연한 조치"라면서 "이번 특검법은 애당초 검찰이 수사중인 사건에 대한 2중수사, 2중기소라는 모순을 안고 있었다"고 노 대통령의 결정을 환영했다. 그는 한나라당에 대해 "의회과반수 독재와 헌법파괴적인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국회 본연의 기능으로 돌아오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재기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