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돈을 준' 기업에 맞춰지면서 청와대가 신중해졌다. "대선자금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며 전면적인 수사를 촉구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방향제시와 검찰수사가 부합하지만 '선(先)정치권 수사,후(後)기업 확인'을 강조한 것과는 달리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2일 "중앙당이나 지구당 장부를 먼저보고 기업의 실무자에게 확인하는 수순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비자금 전체로 확대하지 말고 보험성 정치자금에 한해 수사하자고 제안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 검찰은 기업을 중점적으로 파헤치고 있으며 기업이 자금제공 사실을 털어놔도 분식회계까지 수사할 방침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면제안 용의'까지 언급한 청와대로서는 입장이 상당히 어렵게 됐다. 이와 관련,청와대 관계자는 9일 "대선자금의 실체규명과 이를 통한 정치개혁이라는 큰 틀에서는 검찰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해 나갈 것"이라면서도 "기업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관련 기업인의 불안심리와 이로 인한 경제의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돈주고 뺨맞는다"는 경제계의 불만을 의식한 말이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당시 노 대통령의 '언급'이 너무 멀리 나갔다는 지적을 수긍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런 사정으로 노 대통령의 '사면제안 용의'는 일주일째 쑥 들어가 버렸다. 문재인 민정수석 등 핵심참모들이 사면발언 직후 "현행 법체계에서 가능하다"며 국민적 공감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후속조치는 아무 것도 없다. 불법·탈법이 명확한 경우에도 청와대가 앞서 "이번을 끝으로 봐주자"고 말하기에는 국민정서상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때문에 청와대는 일단 검찰수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여론추이를 살피고 있다. 문제는 기업의 입을 열기 위해 검찰이 전경련을 통하거나 해당 기업에 대고 압박의 강도를 높여간다는 점. 그렇다 해서 청와대가 기업수사와 관련된 입장을 고쳐잡을 수도 없다. 이래저래 청와대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검찰이 벼르고 수사하고 있는데 사면을 다시 강조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청와대 실무자들은 기업인 사면과 관련,3가지 방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 기소 전단계에서 내부적으로 매듭짓는 '내사유예'나 '기소유예'다. 법적으로 사면은 아니지만 문제삼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사면하자는 것이다. 둘째 검찰의 '공소취소'.기소한 뒤 다시 취소하는 방식인데 선례가 드물고 일선 검찰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 가능성은 희박하다. 셋째 형이 확정된 후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하는 방안이다. 통상적인 사면으로,시간이 걸리고 형을 일정량 지낸 뒤 조치여서 현실적으로 사면효과를 낸다고 보기는 어렵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