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최돈웅(崔燉雄) 의원의 100억원 수수 시인 등 SK 비자금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면서 정치권 전체가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 대선과 총선 등 굵직한 선거를 치를때 마다 정치권 주변에선 천문학적 액수의 비자금 수수 의혹이 으레 불거져 나왔지만 그동안은 의혹의 수준에서 맴돌았을 뿐 구체적인 규모가 밝혀진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번 SK 비자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의지가 그 어느 때 보다 강해 보여 수사결과에 따라선 정치권에 일대 회오리를 몰고 올 전망이다. 영수증 처리를 했다고는 하지만 정치적 여당인 통합신당 이상수(李相洙) 총무위원장의 25억원 수수 사실이 밝혀졌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최도술(崔導術)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11억원 수수 의혹도 규명됐다. 여기에 "동창회 코묻은 돈 100만원, 50만원을 공식기구를 통해 입금했고, SK돈은 당 재정위원장으로서 단 한푼도 결재하거나 보고받은 바 없다"고 주장해온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이 혐의 사실을 부인한지 열흘남짓 만에 100억원 수수 사실을 검찰에서 털어놓으면서 정치권의 도덕성은 끝모를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검찰이 수사결과를 하나씩 발표할 때마다 각당은 "그것 보라"며 상대방의 잘못을 꼬집고 비난하는데 급급해 하고 있지만, 속내는 이러다가 모든 것이 까발겨지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SK 한군데만 뒤졌는데도 지금까지 총 130여억원의 비자금 수수 사실이 드러났다면 10대 기업, 50대 기업의 정치자금을 모두 합하면 도대체 여야의 대선자금 규모는 얼마였다는 말이냐는 여론의 의구심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더욱이 대선 뿐 아니라 지난 총선에서 여야 정치인의 돈 수수 의혹도 수사 대상에 포함돼 있고, 선거를 빌미로 정치자금을 받아 해외에 부동산을 사들이는 그야말로 `파렴치한 축재형 비리' 의혹마저 검찰수사를 통해 포착된 상태라고 한다. 법정에서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권노갑(權魯甲) 전 의원의 현대비자금 수백억 수수 의혹도 재판결과에 따라 엄청난 파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정치권은 내부의 자정 요구와 외부의 개혁 압박속에 정치자금법 개정 등 정치개혁 작업에 박차를 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검찰의 수사의지가 확실한데다 과거와 같이 적절한 여야간 타협을 통해 사건을 유야무야해 버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끊을 것은 끊고 새출발하자는 것이 정치권의 전반적 흐름인 것이다. 한나라당이 최돈웅 의원 사건과 관련, 22일 긴급 당직자 회의를 열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이를 계기로 완전한 선거공영제 등 돈안드는 선거를 위한 정치개혁 가속화를 다짐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통합신당의 김원기(金元基) 창당주비위원장도 "100억원 비리에 대한 수사를 계기로 비단 대선과 총선뿐만 아니라 각당의 정당재정에 대해 공개하고 투명정치의 출발점이 돼야한다"고 주장했고, 김성순(金聖順) 민주당 대변인은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에 맞춰 정치권이 이번 기회를 정치문화발전의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여야 정치권은 선관위의 정치자금법 개정 의견인 ▲100만원 초과 기부 및 50만원 초과지출시 수표.신용카드 사용과 계좌입금 의무화 ▲100만원 초과 또는 연간 500만원 이상 정치자금 기부자 명단 공개 ▲20만원 이상 선거 비용은 신용카드.수표.계좌임금 등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출 등의 내용에 큰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고, 개인적 반대의견을 피력했던 의원들도 현 분위기속에서 공개적 반대를 언급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특히 선관위가 21일 정치자금 기부자의 실명공개가 정치자금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유권해석을 내림으로써 정치권에 대한 선거.정치자금 공개를 요구하는 여론의 압박이 한층 가중되면서 정치자금법 개정에 또 하나의 촉진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벼랑끝에 몰린 정치권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앞다퉈 정치개혁 작업에 착수하면서 정치자금의 투명성 제고라는 국민적 소망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관측이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기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