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한파로 유명한 리처드 L. 워커 전(前) 주한미대사가 22일 별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평소 고인을 아꼈던 전.현직 외교관들은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워커 전 대사는 지난 81년 8월 한국에 부임해 64개월동안 서울에서 근무하면서암울했던 군사독재와 이에 맞서는 민주화 운동을 현장에서 지켜봤던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김대중(金大中)씨의 형량을 낮춰주는 조건으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는 얘기를 자신의 회고록(한국의 추억, 98년 발간)에 남기기도 했다. 워커 전 대사는 한때 연세대에서 강의를 맡아 한국의 젊은 세대들과 격의없는대화를 나누었다. 고인은 5공화국 초기에 글라이스틴 전 대사와 위컴 전 미 8군사령관 등의 기존라인이 얼어붙게 만들었던 한미관계를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레이건 대통령이 다섯 군데의 대사직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제안하자 선뜻 한국근무를 선택한것으로 유명하다. 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이홍구(李洪九) 前 총리 부부는 "한국에 있을 때 한복을 입고 환갑잔치를 벌일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면서 "김승연 한화그룹회장이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팔순잔치를 마련해주자 딸과 사위, 손자 등 일가족과함께 입국했다"고 회고했다. 워커 전 대사는 당시 김 회장 등에게 사의를 표하면서 "10년뒤 다시 한번 모이자"고 제의한 적이 있다고 동석했던 전직 외교관들은 섭섭해 했다. 최영진(崔英鎭) 외교안보연구원장은 "워커 전 대사가 지닌 한국과 한국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고 술회하면서 "우리나라의 어려운 과정을 지켜보면서 깊은 이해가 생겼던 것 같다"며 말했다. 한국인 가운데 고인과 가장 교분이 두터웠던 조동하(趙東河) 전 국토통일원 교육홍보실장은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문관현 기자 kh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