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8일 뉴욕에서 미국과 비공식 실무접촉을 갖고 지난달 30일 폐연료봉의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한의 핵재처리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북한은 올들어 수차례에 걸쳐 핵 재처리가 진행중이라고 주장했으나 한.미 양국은 소량의 핵 재처리를 실시했을 수는 있지만 '시험가동' 수준이며 본격적인 핵재처리에는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추정해왔다. ◇핵재처리 완료 사실일까 외교통상부는 13일 '북한이 미국측에 핵 재처리 완료를 통보했다'는 연합뉴스보도와 관련, 참고 자료를 내고 "정보관련 사항은 정부차원에서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라며 "북.미 접촉에 대해 우리 정부가 코멘트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혀 사실확인을 거부했다. 이는 일종의 NCND(확인도 부인도 아님)로, 명확한 사실 부인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또 북핵 재처리와 관련, 우리 정부의 입장이 최근 점차 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방부 정영섭 군사정보부장은 지난달 19일 국회 국방위에서 "4월말 북한 영변핵 재처리 시설내 굴뚝 3개중 1개에서 일부 연기가 나온 것으로 식별됐다"며 "낮은 수준의 재처리일순 있으나 한.미 양국은 본격 핵재처리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 정보위는 지난 9일 고영구(高泳耉) 국정원장의 비공개 간담회후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원이 북한 영변 핵재처리 시설에서 8천여개의 폐연료봉중 소량을 최근 재처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혀 언급 수위를 한단계 더 높였다. 북한은 4월 18일 외무성 대변인 입을 통해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이 마지막 단계에서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처음으로 재처리 완료 가능성을 언급한 뒤 유사한 발언을 반복해왔다. 단순히 이론상으로만 보면 북한이 폐연료봉 봉인을 해제한 시점이 지난해 12월로 이미 7개월이나 지난 만큼 핵재처리를 끝마칠 시간은 충분했다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기술력에 따라 다르지만 본격적인 재처리에 착수했을 경우 2∼6개월이면 작업을 완료할 수 있다고 보고 있기때문이다. 또 한.미 양국은 그동안 폐연료봉 재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비활성 방사능 가스'크립톤 85'의 방출 유무를 핵재처리 여부 근거로, 핵재처리 완료를 부인해왔지만 이론적으로는 은닉된 지하에 재처리 시설이 있다면 크립톤이 포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北 '레드라인' 넘나 외교부 당국자는 13일 "북한의 핵 재처리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있지만 완료됐다고 볼 근거를 접한 바는 없다"며 "(북핵) 상황이 특별히 악화되고 있다고 보지 않는 만큼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노력은 계속된다"고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은 '벼랑끝 전술'을 쓰기 때문에 하나 하나의 움직임에 과하게 반응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윤영관(尹永寬) 외교부장관도 이날 TV에 출연, "지금은 추가적 조치의 내용이 논의될 단계가 아니고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만들어야 할 때"라며 북핵 문제가 심각한 국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핵재처리 완료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북핵 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는 북한이 상황을 악화시킨 것인 만큼 한.미, 미.일 정상회담에서 거론된 '추가적 조치' 등이 발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 채택이나 대북경수로 사업 중단 문제가 급박한 현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지난 2월 북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넘긴 뒤 5개월이 지나도록 안보리의 조치가 유예됐던 만큼 북한이 상황을 악화시킬 경우, 중국과 러시아도 본격제재가 아닌, 권고적 성격의 의장성명까지 거부하기는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장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던 대북경수로 사업에 대해서도 일시중단 또는 더 나아가 완전중단 조치가 내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핵재처리 완료가 입증됐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레드라인(한계선)'을 넘어선 것으로 규정하고 미국이 경제재제나 군사제재 등 본격적인 제재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레드라인 문제에 대해 한.미가 사전에 개념을 정리하고 있지 않다"며 "상황이 가변적인 만큼 상황을 그 때 그 때 평가하고 대처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이나 대북경수로 사업 중단조치가 내려질 경우 북한이 자극을 받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초래될 수 있는 만큼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핵재처리 의도가 새로운 카드를 통해 미국의 관심을 유도, 북.미대화의 교착상태를 깨보려는데 무게가 실린 것인지, 아니면 핵억지력 확보 쪽에 기울어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추승호 기자 ch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