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 의혹사건'에 대한 재판이 4일 오후서울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 `국민의 정부' 핵심인사들은 이날 피고인 신분으로 공판에 출정, 대북송금 과정의 `불법성'에 대한공소사실에 대해 대체로 시인했다. 그러나 이 행위를 놓고 사법적 판단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향후 재판과정에서 특검팀과 이들 피고인의 변호인단간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변호인단은 반대신문이 본격화되는 다음 공판부터 대북송금이 대북외교의 일환인 `통치행위'였기 때문에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적어도 최소한의 처벌에그쳐야 한다는 주장을 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대북송금'이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역사적 목표를 위해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재판부에 호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특검팀은 대북송금이 국민의 사전 양해나 동의없이 불법적으로 이뤄졌기때문에 실정법 위반이라는 점을 집중 부각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특검팀은 이날 첫 공판에서 대북송금이 남북교류협력법 등에 위반된다는점을 지적하면서 관련 피고인들로부터 공소사실에 대한 `인정'을 받아내려 했다. 현대가 대북송금 자금 4억5천만달러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박 전 장관과 이 전수석이 산업은행에 외압을 행사, 부당한 대출을 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재판 내내첨예한 공방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 전 장관은 자신의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 특검조사과정에서 "2000년 5-6월에는 문화관광부 장관이었으므로 산업은행에 대출 압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왔다. 이에따라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당시 대북특사였고, 정권의 실세였던 점, 이기호 전 수석과 공모했다는 정황을 집중적으로 지적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나 박상배 전 산은 영업1본부장의 배임 혐의를 놓고서도 한바탕 격론이 벌어질 태세다. 이들은 "당시 대출을 해달라는 이 전 수석 등의 말을 청와대의 뜻이나 의지로받아들였고, 대북 송금용인지 몰랐고 배임 의도 역시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특검팀은 대출금 회수가 불투명한 현대상선 등에 수천억원을 대출한 것은 산업은행에 대한 명백한 배임행위라고 공격할 계획이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이 개입한 송금과정에 대해서는 크게 다툴 부분이 많지 않을전망이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첫 공판에서 송금과정 개입 혐의에 대해 대체로 시인했으며,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도 옛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를 공소사실 그대로 수용했다. 이번 재판은 특검법상 3개월내에 마무리되어야 하는 만큼, 재판부는 빠듯한 공판일정에 쫓길 것으로 예상된다.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맞물린 `대북송금'에 대해 사법부가 어떤 판단을 하게 될 지도 주목되지만 재판과정에서 특검팀이 제기한 공소사실 외에 새로운 어떤 사실들이 불거지게 될 지에 대해서도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서울=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freem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