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다자회담'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함에 따라 북핵 문제를 둘러싼 회담형식의 변화가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4일 담화를 통해 '선(先) 북미대화'라는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미국이 제기하는 다자회담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달 12일에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면서 미국과 대화에 나설 것임을 밝혔고 이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지만 북한은 같은 달 23일부터 베이징(北京) 3자회담에 참석했다. 따라서 이번에도 북한이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다자회담 참여 쪽에 무게를 실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미일 정상회담에서 5자회담과 관련한 얘기가 거론된 직후에 북한이 입장을 정리해 발표했다는 대목도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외교 무대의 관례를 볼 때 다자회담 진행 중에 다양한 양자회담이 열리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북한은 다자회담을 열면서 북미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미국과 양자회담에 집착하는 것은 체제안보 해결이라는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핵이라는 협상카드를 버릴 수 없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 초강대국으로 국제사회에 일방주의 패권질서를 강요하고 있는 미국의 보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양자회담의 유용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정부 시절 북미 양자회담을 통해 이뤄진 제네바 기본합의가 아무런 기여를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여기에다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할 경우 다음 단계로 대북 경제지원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이런 상황에 대비해 비용을 분담할 일본과 한국의 참여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또 북 핵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 미국의 힘에 의한 해결방식을 추구할 경우에도 회담에 한.일 양국을 비롯한 러시아와 중국 등 주변국들이 참여하고 있어야만 힘의 사용을 정당화할 수 있다. 북한이 이번에 다자회담 수용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은 결국 미국과 대화를 위해 회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적 입장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미 정상회담과 미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추가적 위협이 생기면 '추가적 조치'와 '강경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한 상황에서 북한으로서는 위기의식을 느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한과 일본이 참여하는 다자회담이 열리게 된다면 북한은 남북대화를 뒷순위로 돌리는 이른바 통미봉남 정책을 또다시 구사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체제의 근본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과 회담이 중요할 뿐 아니라 한미 정상회담 이후 나타나고 있는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대북자세에 북한이 불만을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21일 노 대통령의 "북한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지 않겠다"는 발언과 김희상 국방보좌관의 '북한 정권ㆍ체제 분리대응' 발언에 대해 "우리와 6.15 공동선언을 함께 탄생시킨 남조선의 이전 당국에 대한 비방인 동시에 우리(북)에대한 용납될 수 없는 도전"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