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가 북측의 기조연설 발언 파문으로 인해 회담 일정을 하루 이상 넘긴 마라톤 협상 끝에 경협 지속 추진과 쌀 40만t 지원에 합의하고, 23일 저녁 전체회의를 끝으로 종료됐다. 남북은 회담 교착의 원인이었던 `헤아릴 수 없는 재난' 발언과 기조연설 공개에 대해서는 북측이 사실상 유감을 표현하는 선에서 봉합됐다. 남북은 또 쌀 40만t을 차관 형식으로 지원하고, 경의.동해선 철도연결식과 개성공단 착공식, 금강산광광, 임진강 수해방지를 위한 공동조사를 6월중에 개최한다는데 합의했다. 그러나 북핵문제의 경우 남측은 제 10차 장관급 회담 공동보도문 수준의 문안을 합의문에 담자고 요구했으나, 북측은 경제회담 합의문에 이를 포함시켜서는 안된다고 맞서 포함되지 못했다. 이번 회의에서 합의된 안건을 항목별로 살펴본다. ◇ `재난' 발언과 기조발언 공개파문 = 북측 대표단 박창련 국가계획위원회 1부위원장이 20일 오전 첫 전체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난데없이 "남측이 핵이요, 추가조치요 하면서 대결방향으로 나간다면 남북관계가 `영(零)'으로 될 것이며, 남측에서 헤아릴 수 없는 재난을 당할 것"이라는 위협성 발언을 하면서 회담 분위기가 경색됐다. 더욱이 북측은 비공개로 약속했던 이 기조발언을 이날 오후 조선중앙TV를 통해 전문 공개하는 중대한 위반을 저질렀다. 이때부터 남측 대표단의 태도는 단호해져, 이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을 경우 본 안건인 경협과 쌀 지원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 전달했고, 북측도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의 "`대북 추가조치'가 뭘 의미하느냐"며 역공세를 폈다. 이로 인해 20일 오후 6시30분 수석대표 접촉이후 22일 오후 2시42분 대표단 실무위원 접촉이 이뤄지기까지 무려 44시간동안 공식접촉을 갖지 않는 등 신경전을 벌였다. 이와 관련, 북측은 비공식 접촉을 통해 "문제의 `재난'발언은 원론적 수준의 설명이었다"면서 회담 재개의지를 던져 회담이 급진전됐다. 이어 22, 23일 밤샘접촉에 이은 마라톤 협상을 거쳐 북측은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발언의 취지는 대결이 격화되어 북남관계가 영으로 되고 재난이 닥쳐와 북이나 남이나 불행하게 되지 않고 다같이 잘되기를 기대하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음을 명백히 하게 됩니다"라고 유감표명을 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측의 해명은 사안의 심각성에 비추어 만족스럽지 않으며 구두해명에 그쳤다는 게 아쉬운 대목"이라면서 "그러나 남북회담중의 북측 문제발언에 대해 유감성 해명을 받아낸 것은 전례를 감안할 때 진일보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또 남측도 `대북 추가조치'에 대해 "이는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북측이 불필요하게 확대 해석하지 말고 핵문제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을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핵문제 해결과 경협과의 관계는 연계가 아니라 핵문제가 악화되지 않는 한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 대북 쌀 지원 = 당초 남측 대표단은 `북핵문제가 악화되지 않고 분배의 투명성이 확보될 경우 쌀 지원을 포함한 경협현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한다'는 입장으로 회담에 임했다. 특히 `연리 1%에 10년거치 20년상환'이라는 차관형식을 띠기는 하지만 쌀 지원은 `경협의 모자를 쓴 인도적 차원의 문제'로 보고, 경협보다는 인도적 지원에 무게를 뒀다. 이와 관련, 북측은 지난 4월말 제 10차 남북장관급 회담에 이어 이번 경협위 회의에서도 쌀 50만t 지원을 요청했으나, 남측은 예년수준(40만t)에서 지원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끝까지 관철했다. 남측은 그러나 분배 투명성만은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공동합의서에 북측이 10만t 단위로 분배결과를 통보하고, 분배결과 통보후 동.서 각각 1곳이상 분배현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앞서 한미 양국 정상은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북한에 대한)인도적 지원이 정치적 상황 전개와 연계되지 않고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하고 이 지원을 필요로 하는 주민들에게 확실히 전달되도록 한다"고 밝혔다. ◇ 경의.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사업 = 이번 회담에서 양측은 경의.동해선 궤도연결을 위한 행사를 군사분계선(MDL) 연결지점에서 6월10일경에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경의.동해선 철도연결사업은 지난 3월 제 4차 철도.도로연결 실무접촉에서 합의된 대로 남북은 군사분계선에서 각각 자기측 방향으로 공사를 진행시키고 있다. 현재 MDL을 기점으로 남북 모두 25m 가량 레일을 설치하지 않은 상태다. 남북은 연결식은 실무차원에서 간소하게 치르기로 합의했다. ◇ 개성공단 착공식 = 작년말 예정이었던 착공식은 그간 남북관계의 부침에 따라 5개월 가까이 연기돼왔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남북 양측은 착공식을 사업자인 현대아산.한국토지공사,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간 합의를 거쳐 6월 하순에 개최하기로 했다. 문제는 북측이 사업자 자격으로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과 김윤규 사장 참석을 고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 회장과 김 사장은 대북송금 특검수사의 주요 대상자로 출국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개성공단 사업은 착공식을 마치면 현장측량조사를 거쳐, 본격적인 1단계 사업에 착수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개성공단에 입주하는 업체에 취업하는 북한 근로자의 월 기준임금은 사회보장비를 포함해 65달러로 확정된 상태다. 개성공단 조성사업은 지난 2000년 8월 현대와 조선아태평화위간에 합의된 것으로 약 2천억원을 투입해 개성 판문군 평화리 일대에 총 800만평 규모의 공단과 1천200만평 규모의 배후단지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 금강산 관광사업 = 남측은 이번 회의에서 지난달 26일 북측의 금강산관광사업 중단조치로 사업자인 현대아산이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며 조속 재개를 촉구했으나 북측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피해방지를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와 관련, 남측은 5,6월이 관광 성수기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관광객들에 대해 설봉호 승선전에 사스 검진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북측도 해로관광의 경우 사스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대로 빠른 시일내 재개한다는 쪽으로 태도변화를 보였으며, 남북은 최종 전체회의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해 육로 및 해로관광을 6월중에 재개하기 위해 적극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으로 현대아산은 매달 30억원 가까운 손실이 예상된다. ◇ 임진강 수해방지 사업 및 임남댐(금강산댐) 방류 = 회담에서 남측은 임진강 수해방지를 위해 홍수기 이전에 북측 지역에 대한 현장조사와 이 지역의 수문자료 교환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고, 북측도 이에 호응해 수해방지 공동조사를 6월중에 진행하는 한편 장마 전에 홍수예보체계를 구축한다는데 동의했다. 북한은 지난달초 해마다 극심한 피해를 주는 임진강 수해방지를 위해 묘목 1억 그루를 요청했지만, 정부는 현재 지원 가능한 묘목은 200만 그루에 불과하다는 답을 보낸 바 있다. 남북은 또 장마에 대비, 임남댐 방류와 관련해 필요한 통보를 하기로 합의했다.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kji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