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총비서 서기실의 길재경(吉在京.69) 부부장의 망명은 여느 인사의 망명에 비할 수 없는 엄청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길 부부장이 지난달 20일 제3국에서 호주 당국에 나포된 헤로인 50㎏을 실은 북한 선박 '봉수호'의 마약 밀수를 총지휘했다는 대목이 그러하다. 최근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외에도 마약 확산에도 책임이 있다며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비난해왔다. 특히 콘돌리자 라이스 미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최근 "북한은 마약과 미사일을 수출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에 대처할 방법을 찾고 있다"며 북한의 마약 밀수와미사일 수출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터져나온 길 부부장 망명이 해상 봉쇄 등을 요구하는 미국내 대북 매파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게다가 길 부부장이 90년대 초부터 김 총비서의 서기실 부부장으로 발탁돼 주로김 총비서의 비밀자금 조성에 관여해온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입에서 마약 외에도 다른 메가톤급 정보가 나올 수도 있다. 길 부부장은 북한 고위 간부들에게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는 김 총비서와그 일가족의 비밀자금 조성현황과 사생활 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지난 98년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위조된 미화 3만달러를 바꾸려다 추방된 전력도 있는 만큼 '북한의 달러 위조'에 대해서도 증언할 가능성이있다. 최근 잇따르는 북한 고위층 인사의 서방 망명 보도는 북한으로서는 '악재 중의악재'라고 할 수 있다.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염기순 제1부부장의 아들인 염진철(45)씨의 망명은 그가관련된 홍순경 전 태국 주재 북한대사관 과학기술참사관 일가의 납치사건 실상을 국제사회에 폭로하는 계기가 될 개연성이 있다. 최근 미국으로 망명했다고 외신을 통해 보도된 남한 출신의 북한 핵과학자 경원하 박사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실상을 털어놓을 것으로 예상돼왔다. 결국 북-중-미 3자 대화가 벌어진 시점에 마약, 핵무기, 달러 위조 등 북한의치부를 파악하고 있는 인사들이 잇따라 망명하고 있는 셈이어서 가뜩이나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의 처지가 더욱 난감한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