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이번 방미에서 미국 정부와 국민에 대한 언급이나 9.11 테러현장 방문 등을 통해 `실용주의 외교'를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11일(이하 한국시간) 출국 이후 확고한 한미동맹관계 구축과 이의 토대인 부시 대통령과 미국민들의 신뢰회복에 주안점을 두고 워싱턴 입성을 위한 사전정지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출국전 스스로 다짐했듯이 한국 대통령으로서 `배역에 몰입'한 모습이다. "북핵문제에 관한 한 부시 대통령의 입장이 중요하다"거나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을 것"이라는 발언이 대표적인 경우다. 코리아 소사이어티 초청 만찬연설에선 "만약 53년전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까지 말했다. 또 "한국은 미국과 가장 가깝고도 중요한 동맹관계를 유지해나갈 것"이라며 "저와 한국 정부는 성숙하고 완전한 한미동맹관계의 발전을 위해 변함없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발언의 기조는 뉴욕동포 간담회에서부터, 미 경제인 간담회,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면담, 각종 단체 모임 연설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은 이제 노 대통령 발언의 `단골메뉴'가 됐다. 특히 미국의 최대 관심사인 북핵 문제와 관련, 노 대통령은 북핵 불용외에도 국내에선 거의 언급하지 않은 `제거' 및 `국제적 검증' 절차를 강조하면서 미국측과 코드를 맞추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을 만나 유엔의 대북 인도적 지원과 장기개발계획에 대한 협조를 요청받고선 "현재 북미간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미국과 이 문제를 사전조율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철벽공조'를 강조한 셈이다. 노 대통령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도 서울의 용산미군 기지는 조속히 이전하되 미2사단 재배치에 대해선 북핵문제 해결때까지 유보해 줄 것을 여러차례 촉구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한반도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미국과 다른 얘기도 할 수 있다" "북한을 범죄자가 아닌 협상상대로 대해야 한다" "자주국가의 국민으로 당당하게 하겠다. 누구보다 국가적 민족적 자존심을 살리는 당당한 대통령이 되겠다"며 `자주외교'를 강조해온 것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행보는 이라크전 파병 결정을 계기로 참여정부 출범이후 엇나가던 한미관계가 회복국면으로 전환하긴 했지만 미국에선 여전히 한국내 `반미'를 미심쩍어 하면서 "한국정부가 이중플레이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부시 대통령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에 관한 강경입장을 밝힐 것이란 관측도 제기돼 왔다. 이렇게 볼 때 노 대통령의 뉴욕 행보는 한반도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기본입장에서, 9.11 테러사태 이후 잠재적 위협을 사전 제거한다는 공세적 안보전략으로 전환한 미국 입장에 대한 이해를 표명하면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한국의 입장에 대한 미국의 이해를 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의 입장에선 어떤 선택도 가능하겠지만"이라면서도 "그에앞서 미국의 오랜 맹방인 한국민의 의견을 존중해줄 것으로 믿는다"(뉴욕 금융계 인사들과 오찬간담회)고 상호존중을 강조하는 것도 빼놓지 않고 있다. 또 "한국이 해결해나가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라며 "한국이 다시 전쟁에 들어가는 것은 도저히 용인될 수 없으므로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이 부분을 재확인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뉴욕타임스가 노 대통령이 이번 방미에서 미 행정부내 정리되지 않은 강.온파 대립만 보게될 수도 있다고 보도한 대로, 3자회담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부시 행정부가 `한국민의 의견을 존중'하는 쪽으로 설득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연합뉴스) 조복래 고형규 기자 cbr@yna.co.kr kh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