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일)는 취임 후 최악의 날이었던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불쑥 꺼낸 말이다. 순간 비서진들 모두는 침묵했다. 이후 무거운 분위기가 계속됐음은 물론이다. 노 대통령은 곧바로 "보고하는 것은 최대한 줄이고,협력해서 할 일거리에 대해서 얘기하자"며 회의를 진행했다. 취임후 37일째였던 2일은 노 대통령에겐 "의미있는 날"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회 국정연설을 했고,그동안 최대 현안이었던 이라크전 파병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이라크전 파병논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남의 속타는 줄도 모르고…"라고 했을 만큼 골치아픈 사안이었다. 이처럼 앓던 이가 빠져나간 격이었는데 왜 '최악의 날'이었다며 한숨을 내쉬었을까. 청와대 관계자는 "KBS사장 선임건 때문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2일 30분간의 국정연설 후 약 7분간 서동구 KBS사장 선임과정을 설명했다. 연설원고에 없던 내용을 즉흥적으로 말한 것이다. 이를 지켜본 일부 민주당 의원들조차도 "의원들의 신상발언 같다"고 할 정도였다. 노 대통령은 이날 국회연설 직전에 서 사장의 사의소식을 보고받고 선임과정과 인사권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것으로도 미흡했다고 판단했던지 노 대통령은 연설 직후 청와대 기자실로 찾아와 KBS사장 선임에 대한 기자회견도 가졌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인사에 관여 않는다고 했는데 오늘 보니 거짓말한 것처럼 느껴진다"며 "제 불찰"이란 표현도 썼다. 저녁에는 KBS노조,언론노조 등과 예정에 없었던 간담회도 가졌다. 그러나 합의점도 나오지 않았다. 배석한 청와대 관계자는 "마치 노사협의회를 보는 듯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3일 검찰총장과 국립중앙박물관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라는 이상한 명칭을 가진 정부가 인사절차를 복잡하게 해서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한다"고도 말했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