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25일 공식일정만 13개를 소화할 정도로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특히 취임 첫날부터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 등 한반도 주변 4강과의 발빠른 외교행보를 보였다. 노 대통령은 이날 낮 12시20분 청와대에서 총리 임명동의 요청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취임 후 첫 공식업무를 시작했다. 이어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정우 정책실장,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 수석급 비서관과 보좌관 12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노 대통령은 임명장을 받으면서 깍듯이 인사하는 문 실장에게 "너무 고개 많이 숙이지 않아도 됩니다. 선거때도 아닌데…"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고이즈미 총리와 새정부 출범 후 첫 정상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한.일간에 해저터널을 뚫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왔지만 북한 때문에 실감을 잘 못하는 것 같다"면서 "북한문제가 해결되면 해저터널 착공 문제가 경제인들 사이에서 다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일본과 한국, 러시아를 기차로 운행할 수 있게 된다면 경제적 의미뿐 아니라 한.일 관계가 가까워지는 것으로 이해돼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7시 폰 바이체크 전 독일 대통령, 나카소네 야스히로.모리 요시로 전 일본 총리, 첸치천 중국 부총리, 미노로프 러시아 상원의원 등 해외 귀빈들과 국내 정관계 지도자 등 2백여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 취임경축 사절단 만찬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히딩크 감독과 그의 연인 엘리자베드, 황선홍 축구 선수, 심수관 재일 도예가, 유미리 재일 소설가, 미국의 환경운동가 데니 서, 미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스칼라피노 교수와 커밍스 교수 등도 초청됐다. 노 대통령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 등을 담은 초청 인사말을 한 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는 건배할 때 '위하여'라고 많이 하는데…"라며 '위하여'로 건배제창을 제의. 그러면서 "'위하여'란 말이 어렵나요"라고 말해 장내에 웃음을 유도했다. ○…KBS MBC 등 주요 방송사들이 생중계하는 가운데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50분 서울 명륜동 자택을 나섰다. 전날 밤 잠을 제대로 못이룬 듯 눈이 다소 부은 노 대통령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주민 3백여명과 일일이 악수했다. 그는 즉석 인사말을 통해 "꼭 6년 전 이 집에 이사와 15대 종로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해수부장관을 거쳐 마침내 대통령이 됐다"고 회고한 뒤 "국민과 함께 따뜻하고 밝은 정치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언제 한번 초청하겠다"고 밝힌 대목에서는 주민들의 힘찬 박수가 터져나왔다. ○…노 대통령은 이어 국립현충원을 찾아 헌화하고 분향했다. 5년 전 김대중 대통령은 동교동 자택을 나선 후 청와대를 먼저 들렀다. 무궁화 대훈장을 받기 위해서였는데 이번에는 노 대통령이 "한 일이 뭐 있느냐"며 훈장 수상을 거부해 청와대 일정이 하나 줄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