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대 대통령선거 개표는 그 어떤 스포츠 경기보다 박진감 넘치게 진행됐다. 서울역에서, 종로에서, 가정에서 개표 상황을 지켜보던 유권자들은 엎치락 뒤치락하는 두 후보의 득표율로 손에 배어나는 땀을 연신 닦아내야 했다. 노무현 후보는 개표 초반 이회창 후보에게 밀렸으나 오후 9시를 넘기면서 이 후보와 표차를 조금씩 넓히며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투표가 끝난 19일 오후 6시. TV방송 3사가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먼저 웃었다. KBS는 노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2.3%포인트차로 앞섰다고 발표했다. 노 후보는 MBC와 SBS의 출구조사 결과에서도 이 후보를 각각 1.5%포인트차로 따돌리며 앞섰다. 노 후보가 당선에 한걸음 성큼 다가서는 듯 보였다.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민주당 당사는 환호성에 휩싸였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건 혁명이야, 혁명"이라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같은 시간 한나라당 당사. 상황실에 모인 당직자들은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며 애써 태연한 표정이었다. 김덕룡 의원은 "방송사 여론조사 결과가 기대에 미흡한 게 사실"이라면서 "오차범위 이내인 만큼 희망을 갖고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오후 6시40분이 넘어서면서 부산 동구에서부터 개표가 진행되자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출구조사 결과와는 달리 이 후보가 노 후보를 5천여표차로 앞선 것. 오후 7시 50분께 이 후보와 노 후보의 특표수는 최고 10만표까지 차이가 나기도 했다. 출구조사로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한나라당 관계자들 얼굴에도 희색이 돌기 시작했다. 서청원 선대위원장은 힘찬 목소리로 "예상득표보다 개표결과가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다"며 "우리가 이긴다"고 지지자들을 격려했다. 지지자들도 "이회창 대통령, 이겼다 이겼다"를 연호했다. 출구조사 결과가 개표에서도 이어지길 기대했던 민주당 관계자들은 "초반 열세는 승부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노 후보의 승리를 확신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개표소에 참관인으로 나가 있던 민주당 관계자는 이 후보의 우세가 점쳐지자 "설마 뒤집히는 것 아니냐"며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승부의 분수령이 됐던 때는 밤 8시40분.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전국의 평균 개표율이 34.2%를 넘어서면서 초반 열세를 보이던 노 후보는 이 후보와 동률을 이뤘다. 투표자 숫자가 많은 서울 등 수도권의 개표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은 노 후보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개표 시작후 2시간여만에 노 후보는 이 후보를 따라 잡았다. 이후 3∼4분간 두 후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치열한 접전을 치렀다. 오후 9시. 개표율이 50%를 넘어가면서 윤곽이 드러났다. 조금씩 앞서던 노 후보의 지지율은 1%포인트 이상 격차를 넓히며 승부를 굳혔다. 이 시각 서울역앞에서 개표상황을 지켜보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소속 회원 5백여명은 "노무현 만세"를 외치며 승리의 감격을 미리 만끽했다. 홍성원 기자 anim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