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3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핵시설에 대한 봉인과 감시카메라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핵시설 가동을 위한 첫 단계 행동에 착수한 것으로 볼수 있다. 북한은 IAEA측에서 이같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직접 봉인과 카메라를 제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설정한 '금지선(red line)'을 넘어서는 것으로 북·미간의 관계는 극한 대결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수위 높이는 북한 북한의 요구대로 핵시설 봉인이 제거되고 감시 카메라가 철거될 경우 폐연료봉 재처리를 통해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해지게 된다. 북한이 봉인 제거 요구 대상으로 '모든 핵시설'이란 표현을 쓴 것은 8천여개의 폐연료봉을 모두 활용하겠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볼수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핵시설 봉인 제거 요구는 핵 시설 가동을 실천으로 옮기겠다는 의사를 보인것"이라며 "북한은 미국의 태도를 봐가면서 대응 수위를 높여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미국은 북한이 '금지선'을 넘을 경우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적인 입장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일방적 조치를 취할 경우 중대한 국면을 맞을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그는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방편이라 하더라도 북한이 핵 감시시설을 제거하는 일이 벌어질 경우 한반도는 한치 앞도 내다볼수 없는 위기국면으로 빠져들어갈 가능성이 짙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북한이 현지에서 활동중인 2명의 IAEA사찰관을 추방한다거나 핵비확산조약(NPT)에서 탈퇴하겠다는 등의 극단적 조치들은 아직 취하지 않고 있다. 협상의 여지는 남아있는 것이다. 또 명시적으로 제네바합의를 파기한다는 언급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로 해석될수 있다. 북한이 직접 핵시설 봉인과 감시 카메라를 제거하지 않고 IAEA측에 미룬것도 협상을 위한 '시간벌기' 전략이라는 분석이 있다. ◆IAEA의 북핵 감시현황 IAEA는 지난 94년 북한 핵시설을 동결키로한 북·미간 제네바합의에 따라 영변에 있는 5㎿ 원자로에서 꺼내 수조에 넣어둔 폐연료봉 8천여개와 5㎿ 원자로 자체 핵심시설 등을 봉인했다. 또 카메라도 설치해 북한의 핵시설을 감시해왔다. 8천여개의 폐연료봉은 모두 50t분량이다. 여기에 핵무기 3∼6개를 만들 수 있는 25㎏가량의 플루토늄이 포함돼 있다. 폐연료봉 밀봉 작업은 96년 4월에 시작됐고 현재 영변 저장고에 보관돼 있으며 IAEA 상주사찰관의 감시를 받고 있다. 5㎿ 원자로는 장기간 운전이 정지됐기 때문에 핵심시설에 대한 봉인이 풀리더라도 재가동이 어렵거나 대규모의 수리작업을 거쳐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폐연료 재처리 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도 94년 이후 IAEA가 봉인하고 사찰관이 상주 감시 중이다. 방사화학실험실은 완성된 시설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동하려면 2년이상의 추가 공사가 필요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