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대북 핵 압박을 지속하는 가운데서도 남북대화가 중단되어서는 안된다고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달 초에 이어 약 한 달 여만에 다시 서울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차관보가 11일 정세현(丁世鉉) 통일부 장관과 면담하며 "미국 정부는 남북대화와 협력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정 장관도 이날 한 강연에서 남북대화를 거듭 강조했다. 한-미 양국이 이처럼 핵 문제와 관련해 일치된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최근 일본에서 열린 한-미-일 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의 결과라는데 큰 이견이 없다. 또 최근 미국 정부가 핵 압박 강도를 높이면서 남북 대화가 차질을 빚는 것이아니냐는 우려감이 높아가는데 따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미 양국의 이런 움직임은 일단 북핵 문제가 논란을 빚더라도 남북대화는 계속될 것이라는 안도감을 갖게 한다. 그러나 한-미 양국의 이런 입장은 모든 대화 채널을 통해 북한에 핵 개발 포기를 촉구하겠다는 기존의 입장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양국이 남북대화와 교류 협력을 강조하는 이면에 북한에 대한 '선 핵 개발 포기'를 계속 압박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어 기대만큼 남북관계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남측 입장에서도 '핵 개발 포기'에 대한 요구가 단순히 북한측의 입장 표명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이해와 맞물려 전반적인 교류협력 사업 추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켈리 차관보가 이날 "남북 대화와 협력이 북한 핵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게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 것이나 정 장관이 이날 오전 남북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1993년 '1차 한반도 핵 위기' 때를 회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미국이 대북 대화를 계속하는 가운데 남한이 '대북 대화 불가'를 선언하는통에 46억 달러가 소요되는 경수로사업비 가운데 70%를 부담하면서도 미국에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것이다. 정 장관의 이 말은 실리주의 원칙에 입각해 남북대화를 남측이 주도한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대화를 핵 문제 해결의 한 방편으로 활용한다는 측면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비록 남북대화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한반도 정세가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 방북 전후의 해빙 무드를 회복하기는 당분간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연합뉴스) 강진욱기자 kj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