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북 핵 압박 공세가 점차 가열되면서 북일관계에 이어 남북관계마저 경색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말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제12차 북일 수교 회담(29-30)이 핵 문제로 진전을 보지 못한데 이어 8일 평양에서 종료된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3차회의도 추후 일정을 합의하는 데 그쳤다. 이번 회담에서 북측은 8차 남북장관급회담때 "빠른 시일내에 실무협의를 한다"고 합의한 동해 공동어로 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인 협의 일정을 잡을 것을 요청했지만 남측은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9월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역사적인 평양 방문과 북일 정상회담으로부터 지난달 8차 남북장관급회담(19-22)에 이르기까지 급류를탔던 한반도 해빙 무드가 난기류에 빠졌음을 시사한다. 12차 북일 수교회담이 결렬된 것이나 남측이 이처럼 대북 교류협력에 소극적인태도를 보이는데는 지난달 16일 미국측이 '북 핵 개발 시인'을 발표하면서 한-일 양국을 압박한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또한 이런 상황은 제임스 켈리 미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가 지난달 초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할때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북 핵 개발 시인'을 발표한지 닷새만인 지난달 22일 평양방송은 '미국은 오만한 강권정책을 버려야 한다'는 제목의 보도물에서 "특사 켈리는 우리의 핵및 미사일 문제와 상용무력 축감 문제 및 인권문제까지 걸고들면서 우리가 미국의안보상 우려를 해소하지 않으면 조-미 대화도 없을 뿐 아니라 좋게 나가는 북남관계,조-일관계가 파국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최후 통첩식 강권을 휘둘러댔다"고 밝힌바 있다. 이어 미국은 '북 핵 개발 시인'을 선언(10.16)하며 압박에 나섰고, 일본은 정상회담 합의를 무시하고 12차 수교회담에서 핵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결국 이로인해 회담이 결렬됐다. 재일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지난 8일 '현장에서 목격한 조일정부간 회담'을 보도한데 따르면 북한은 수교회담에서 "일본이 마치 미국의 대변인처럼 행동한다"며 불쾌감을 표시했고 이어 지난 5일 북일정상회담때 약속한 미사일 발사 실험 유예 조치를 재고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핵 문제를 앞세운 미국의 간섭으로 북일 수교회담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한데 따른 강한 반발이었다. 그러나 이달 들어서도 미국의 대북 핵 압박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린 한-미-일 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 등에서 미국은 대북 중유 제공 중단을 시사했고 더글러스 파이스 미 국방부 정책차관보를 서울에 보내 남북 경제협력이 핵 문제 해결보다 앞서 가는데 대해 제동을 걸었다. 파이스 국장은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추진할 때 핵문제 등 다른 분야와 균형을맞춰가야 한다"며 완곡한 표현을 구사했지만 때마침 평양에서 진행되고 있는 남북경제협력추진위 3차회의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어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8일 AP통신과의 회견에서 '대북 대화 없음'을 거듭 확인했고 일본과 한국 역시 모든 대북 대화에서 핵 문제 해결을 촉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결국 북-미 양국이 핵 문제에 대한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한 한-일 양국의 대북대화 행보는 당분간 갈지자(之) 행보를 계속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연합뉴스) 강진욱기자 kj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