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일본이 29일 지난 1991년 수교협상 개시이래 처음으로 단 한차례도 회담장소로 이용되지 않았던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대좌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총 11차례의 수교협상 본회담은 양국의 수도인 도쿄와 평양에서 각각 2차례씩,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나머지 7차례가 열렸다. 이번에 가까운 도쿄, 평양, 베이징을 제처두고 머나먼 땅 말레이시아에 협상테이블을 차린 일차적인 이유는 지난 9월 17일 북일 정상회담 이후 불거진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내 격앙된 분위기를 감안한 때문이다. 도쿄에서 수교협상이 재개된다면, 일본의 우익단체들이 가두시위 등을 벌여 회담 분위기를 `냉각'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베이징의 경우에는 최근 탈북자들의 잦은 망명요청 사건을 의식한 북한측이 기피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시차와 교통편이 그래도 괜찮은 콸라룸푸르로 회담장소가 낙착됐다. 콸라룸푸르는 북한에게는 `준(準) 홈구장'과도 같은 곳이다. 북한은 이 곳에서 지난 1995년 5월부터 무려 한달여간 미국과 준고위급회담을벌여 제네바합의에 기초한 경수로 지원협상을 매듭지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협상이 영변 핵동결과 관련한 후속회담이었고, 이번 북일 수교협상도 북한의 새로운 핵개발 문제를 핵심의제로 다룰 예정이어서 콸라룸푸르는 북한의 핵과 묘한 인연을 갖게 됐다. 말레이시아는 지난 90년 초반 북한의 식량위기 때 북한을 적극적으로 도와줌으로써 지금도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고승일 특파원 ksi@yonha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