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물가와 월급을 10배 이상 인상하고 식량배급제를 폐지했다는 보도에 대해 탈북자들은 다양한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일부 탈북자들은 우선 물가ㆍ월급의 대폭 인상조치가 사실이라면 그것은 농민시장에서 아주 비싸게 형성되는 현실 물가를 반영함으로써 주민들의 생활난을 해소해주려는 일종의 '시혜성 조치'로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북한은 지금까지 `골고루 분배' 원칙에 따라 식량은 15일에 한차례, 소금ㆍ칫솔ㆍ세탁비누 등 모든 생필품은 한 달 또는 분기별로 지역 국영상점을 통해 국정가격으로 각 가구에 배급해왔다. 이러한 배급제는 80년대 말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하면서 생필품에서부터 서서히무너지기 시작해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식량 배급까지 거의 유명무실해졌다. 이때문에 대다수 주민은 농민시장을 통해 비싼 값에 식량과 생필품을 구입하고 있는실정이다. 국영상점 통하지 않는 모든 물품거래에는 농민시장 가격이 적용된다. 설사 국영상점을 이용한다 해도 상품량이 적어 일반 주민들의 몫이 되는 경우는거의 없고 아는 사람들에게만, 그것도 농민시장 가격에 가까운 비싼 값으로 뒷거래되기가 일쑤여서 국정가격이 그대로 통용되는 곳은 사실상 지하철ㆍ버스ㆍ전화 요금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돼버렸다. 농민시장에서 유통되는 식량이나 생필품의 값이 얼마나 비싼가는 일반 사무원의평균 월급이 100원인 데 비해 쌀값은 1㎏에 60원이나 돼 그 정도의 월급으로는 쌀을2㎏도 살 수 없다는 데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농민시장의 턱없이 높은 물가를 제한하는 방안으로 국영 유통망을 통해 정책적으로 식량과 생필품을 대량 배급할 수 있는 형편도 못돼 외화를 소지한 부유층 이외의 일반 주민은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서는 도저히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북한 당국은 사실상 `공식물가'로 인정되고 있는 농민시장 가격과 비슷한수준으로 물가를 대폭 상향 조정하고 월급도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올려 줌으로써주민들의 생활안정을 도모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일부 탈북자들은 분석했다. 탈북자들은 또 식량배급제가 폐지됐다는 보도와 관련,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지방주민들과 달리 핵심 주민이 살고 있는 평양에는 적지 않은 파란이 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방에서는 오래전부터 식량 및 생필품 배급제가 불규칙적으로 운영됐고 90년대중반 이후에는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평양 시민들에게는 아직까지 식량배급제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어 식량 구입의 주요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탈북자 K(48)씨는 평양시의 경우 `고난의 행군' 시기로 일컫는 90년대 중반에도"몇 달에 한 번 콩을 식량으로 배급해 많은 사람들이 그것으로 연명해 왔다"며 "평양시민들에게는 여전히 식량배급이 필수적 요소"라고 말했다. 탈북자 C(42)씨도 "평양시의 고위층이나 북송교포 등 부유층은 이미 80년대부터식량과 식료품, 생필품 등을 개인 상인을 통해 농민시장 가격으로 구입해 배급에 의존하지 않았지만 아직도 많은 평양 시민들은 배급에 의존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따라서 북한당국이 취한 월급 인상조치는 평양 시민들의 생활에 약간의 도움이되겠지만 식량배급제 폐지로 또 다른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탈북자들은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최선영기자 chs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