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상(張 裳) 총리서리 장남의 국적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장 서리의 남편인 연세대 신학과 박준서(朴俊緖) 교수는 12일 "장남의 한국국적 포기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77년 귀국했을 때 법무부로부터 이중국적 정리를 종용받았고 당시미국국적 포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한국국적 포기가 유일한 대안이었다"고 설명하며 "국적논란으로 힘들어하는 아내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심경을 밝혔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 장남의 출생신고는. ▲아들은 지난 73년 5월18일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 델셀가에서 출생했고 곧한국에 계신 아버지에게 연락, 아들의 출생신고를 그해 5월28일에 정상적으로 마쳤다. 당연히 아들은 미국국적과 한국국적을 모두 갖게 됐다. -- 장남의 한국국적을 언제 포기했는가. ▲77년 초 가족모두가 귀국했을 당시 법무부로부터 장남의 이중국적을 정리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당시는 서슬이 퍼렇던 유신시대로, 법무부는 국적정리를 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해 4월께 통보를 받고 곧바로 미 대사관에 문의하니 18세 이전에는 본인이라도 미국국적을 포기할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남은 선택은 한국국적을 포기하는길이었으며 포기절차를 진행한 뒤 그해 9월12일에 장남의 한국국적 이탈을 허가한다는 내용의 통지문을 받았다. 거의 강제로 국적을 포기한 것이다. -- 호적등본에 장남의 국적상실일자가 73년 5월28일로 기재된 이유는. ▲나도 영문을 모르겠다. 일부의 주장처럼 정말로 아들의 출생신고가 이뤄진 그날짜에 한국국적 포기가 동시에 이뤄졌다면 77년 귀국 당시 왜 법무부가 아들의 국적을 정리하라고 통보를 했겠는가. 분명히 당시 법무부는 아들이 이중국적자이므로조속히 국적을 포기하라고 연락해왔다. 가족들은 그동안 호적 기재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국적상실일이 신고일까지 소급돼 기록된 줄로만 생각했다. -- 주민등록상에는 장남의 인적사항이 아직도 기록돼 있는데.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별다른 고민을 해보지는 않았다. 무언가 착오가있어 남아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동안 아들 앞으로 선거권을 행사하라는 통지가 여러차례 왔지만 10년 이상 외국에서 생활해 한번도 선거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 -- 장남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았다는 말이 있는데. ▲솔직히 의료보험 혜택을 한번도 안받았다면 거짓말이다. 가끔씩 귀국해 국내에 머무는 동안 병원에 갔으니 보험혜택을 받았을 것이다. -- 아들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장남은 77년 귀국해 국적을 포기한 뒤 이화여대 부속초등학교를 나와 한성중학교를 다니던 중 잠시 외국인학교를 다녔다. 미국 코넬대학 엔지니어 스쿨을 다니다가 지금은 연극공부를 하고 있다. 미국국적자로 병역은 당연히 면제 받았다. 아들은 척추측만증이 심해서 89년에 몸안에 티타늄을 넣었기 때문에 지금은 허리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지난 5월 귀국해 지금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 차남은 서울대를 졸업한 뒤 올해 5월 병장 제대를 했고 현재 유학 준비중이다. 두 아들 모두 턱이 길어지면서 아랫니와 윗니가 안맞는 병이 있다. 부모로서 애처로울 뿐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훈 기자 karl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