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의 검찰 소환을 계기로 현정부 출범 이후 '정권의 2인자'로 불려온 권 전 위원의 정치자금 조성과 관리 방식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권 전 위원은 야당시절부터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의 `금고지기'로 불릴 정도로 정치자금 관리를 도맡아 해왔고, 정권의 실세로서 일정 규모의 정치자금을 관리해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심지어 정치권 안팎에서는 "현재의 여권내에서 권 전고문의 도움을 받지 않은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정치자금에 관한 그의 역할을 인정하는 얘기가 적지 않다. 그는 정치자금 문제와 관련, 기회있을 때마다 "나는 정거장일뿐"이라며 "일생을살면서 부정한 돈을 받지 않았으며, 정치자금을 받더라도 조건이 붙은 돈은 받거나개인적으로 축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 권 전 위원은 현정권의 최고 실세이자 `DJ분신'으로서 총선 공천과 정부산하단체장 인사 등에 깊숙이 개입해왔기 때문에 사람이 몰렸고, 그의 주변에서는 정치자금과 관련한 의혹과 잡음이 그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권 전 위원은 97년 한보사건으로 구속됐다가 98년 8.15특사로 풀려나 일본 등으로 장기외유를 떠났다가 98년 말 귀국했고, 김중권(金重權)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이종찬(李鍾贊) 전 국정원장 등 신주류에 밀려 정권출범 초기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는 99년 11월 상임고문이 되면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재개했고, 2000년 4.13총선때 스스로 출마를 포기하고 `물귀신'이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공천 물갈이에 따른 `교통정리'를 하고 낙천자들을 정부산하단체에 배려하는 역할을 하면서 실세로서의 위상을 회복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과 야당때부터 함께 고생해온동지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준 일은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2000년 8.30 전당대회때는 김근태(金槿泰) 정동영(鄭東泳) 의원 두사람에게 각각 2천만원을 지원해준 사실도 확인됐고, 4.13총선에 앞서 공천 실무작업을 주도했던 몇몇 소장파 의원들에게 사무실 운영경비를 지원해준 부분도 확인된 내용이다. 권 전 위원은 의원들의 후원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지만 사람을 보내 50만-100만원씩의 후원금을 꼭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권 전 위원은 한보사건 이후 정치자금 문제에 있어서 극도로 조심스럽게행동해왔기 때문에 직접 돈을 만지는 일은 피했다는 것이 권 전 위원측의 주장이다. 권 전 위원 스스로 한보사건 구속을 "일생일대의 오점"으로 표현할 정도로 뼈아프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석에서 "돈은 당에서 취급하고 나는 관리만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말은 돈을 직접 만지지는 않되 자금의 흐름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뜻으로 그의 정치자금 관리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측근인 이훈평(李訓平) 의원은 "야당때는 정치자금을 직접 조성하기도 했지만,여당이 되면서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어졌고, 더욱이 한보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이후로는 철저하게 조심해왔다"고 말했다. 권 전 위원이 "진승현 일당이 저지른 허위날조"라고 돈 수수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는 것도 이런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나, 한 측근은 "권 전 위원이 주변의 친지들로부터 조건없이 받은 돈 중에 진승현의 돈이 섞여있었던 게 아니냐"고 우려했다. 8.30 경선비용의 출처가 문제가 됐을때 그는 "집사람이 운영하는 음식점 2곳(돈까스.비빔밥집)에서 나온 돈과 곗돈으로 모은 현금, 오래전부터 친지들이 도와준 십시일반이 포함돼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권 전 위원은 정치자금 문제에 관한 한 `상징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에대한 검찰 수사의 폭과 깊이가 어느 정도로 진행될 것인지에 따라 일파만파의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 일각에서는 그의 정치자금에 대한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정치자금을 모으고 사용하는 구시대적 관행이 정리되고 새로운 질서가 자리잡게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제기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