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기부제로 바꾸자고요. 안됩니다." 일본 자민당의 야마모토 의원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돈가뭄에 시달리는 판에 말도 안되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야마모토 의원에 따르면 일본의 정계에서도 기업 위주의 헌금을 개인기부금으로 돌리자는 움직임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선 일본의 정치풍토에선 '돈이 모이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그러한 시도는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물론 고이즈미 총리처럼 대중에게 인기있는 정치인의 경우는 예외다. 고이즈미 총리는 2000년 전체 후원금 8천6백89만엔(약 8억7천만원)중 개인헌금이 2천2백만엔으로 일본 정치인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지만 그 역시 개인헌금의 비중이 25%에 불과하다. 이처럼 일본 만큼이나 정치권이 기업헌금에 목을 매는 국가도 드물다. 그러다 보니 기업헌금의 다과(多寡)에 따라 정치인의 부침이 이뤄지는 일이 종종 목격된다. 얼마 전 일본 정계를 뒤흔든 스즈키 무네오 의원의 경우를 보자. 스즈키 의원은 중간보스급에 불과한데도 전체 7백50여 의원중 99년 후원금 순위에서 3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2000년에는 19위로 주저앉았다. 모금액도 1억4천만엔(약 14억원)으로 61%나 줄었다. 스즈키 의원의 경우 기업 헌금이 전체 후원금의 80%를 차지했다. 그런데 2000년부터 정치인 개인에 대한 기업의 직접 헌금이 금지되자 치명타를 입었다. 결국 부족한 정치자금을 메우기 위해 무리하게 정부입찰 공사에 개입해 이권을 챙기다 꼬리가 잡혀 탈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일본 정치권에서 또 다른 '젖줄' 역할을 하는 곳이 업계단체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업계단체의 헌금도 친기업정당인 자민당에 대부분 집중된다. 외교안보연구원의 박철희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이권과 무관하게 기부하는 문화가 발달한 반면 일본에선 어떤 식으로든 자기에게 돌아오는 이권을 기대하기 때문에 개인기부보다 기업이나 업계단체의 기부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도쿄=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