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정대철(鄭大哲) 고문과 한나라당 박관용(朴寬用) 총재권한대행은 9일 대표연설에서 '상향식 정치'에 의한 정치개혁과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선거공영제 실시 등에서 일치된 인식을 보였다. 두 사람은 그러나 이념 및 정계개편, 남북관계, 경제문제 등 각론에 있어서는뚜렷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정치개혁 평가와 과제 = 여야 모두 대통령 선거 및 국회의원 후보를 당원들의손으로 뽑는 상향식 공천제를 도입하는 등 정치개혁에 앞장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고문은 "민주당의 국민경선제 실시로 국민이 정치의 주인으로 우뚝 서는 정치혁명이 진행되고 있다"며 "이 정치혁명이야말로 밀실의 정치를 광장의 정치로, 봉건적 패권주의를 참여자치의 민주주의로 도약시키는 위대한 출발"이라고 자부했다. 그는 이어 "선거 공영제를 확실하게 도입, 돈 안드는 선거풍토를 반드시 조성해야 한다"며 "특히 양대 선거를 앞두고 정치가 서로를 공격해 혼란이 초래되는 것을막아야 하는 만큼 여야의 전당대회가 마무리되는 대로 여야 대표들이 참여하는 가칭`국정지도자 회의'를 결성,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박 대행도 "우리당은 대권과 당권을 완전 분리했고 총재직을 폐지하고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했다"며 "정당민주화를 가로막아온 구시대적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고 국민이 열망하는 민주정당의 길을 활짝 열었다"고 자평했다. 박 대행은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며 실천이 뒤따르지 못하면 무용지물에불과하다"며 ▲이번 대선에서 상대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과 중상 모략 중단 ▲완전선거공영제 도입 ▲공정한 방송 보도를 제안하면서 즉각 여야 협의에 들어갈 것을촉구했다. ◇이념.정계개편 논란 = 정 고문은 구시대의 낡은 냉전의식을 청산해야 한다며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의 `좌파적 정권' 발언을 비난한 반면 박 대행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정계개편과 집권연장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며 정계개편가능성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특히 정 고문은 정치개혁 항목에서 "여야 모두 지역정당에서 전국적 국민정당으로 거듭 나야 한다"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뭉쳐진 패거리 정당구조도 반드시개편돼야 한다"고 단 한줄로만 `정계개편'을 언급했으나 지역이 아닌 이념.정책기준에 따른 정당구도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정 고문은 그러나 일단 이 전 총재의 이념공세 반박에 초점을 맞춰 "이 전 총재의 말대로라면 지금의 정부는 좌파정권이고 국민경선제의 성공을 기원하는 대다수국민이 좌파적 세력이란 말이냐"고 반문하고 "한나라당은 구시대의 낡은 냉전의식을청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지금 의약분업을 실시하는 미국과 유럽의 자본주의 선진국 대다수가 모두좌파가 지배하는 사회란 말이냐"며 "사회주의 정책과 사회복지 정책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치지도자가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박 대행은 이념문제는 거론하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손'이 계획하고 주도하는 정계개편과 집권연장 음모가 은밀히 진행되고 있으며 남북문제가 정략적으로 이용되고 있고 경제가 선거논리에 휘둘리기 시작했다"며 이른바 `삼각음모'를 주장했다. 박 대행은 "우리 야당을 와해시켜 대선 전에 다수당을 만들겠다고 한다"며 "과거 어느 정권이 이처럼 야당을 파괴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정계개편을 추진했느냐"고 물은 뒤 "정계개편 음모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국민과 함께 야당파괴 공작에 분연히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권력형 비리의혹 = 여야는 권력형 비리의혹에 대한 특검의 성과를 높게 평가하고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거듭 촉구했다. 정 고문은 "각종 게이트 의혹에 대한 국민 시선이 따갑다"며 "검찰은 철저하고공정한 수사를 통해 의혹을 해소하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 공정성에도 무게를 뒀다. 그는 또 "위에서부터 완벽한 도덕성이 유지돼야 깨끗한 물이 아래로 흘러갈 수있다"면서 "사회지도층 인사, 특히 정치와 정부 영역의 자정노력을 간곡히 호소하며,정부는 부패추방을 위한 특단의 대책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관용 총재권한대행은 "차정일 특검팀의 감동적인 `진실 캐기' 드라마를 봤다"면서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으며, 이번 수사가 일부 정치검찰에 의해 땅에 떨어진 검찰의 신뢰회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아태재단 비리의혹에 메스를 가하지 못하면 국민이 검찰에 메스를 가할 것'이라는 네티즌의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면서 "현정권은 남은 임기안에 스스로 저지른 권력형 비리를 반드시 규명해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제관 = 민주당은 최근 경기회복 기조를 낙관적으로 평가한 반면 한나라당은총체적 경제 난맥상을 지적하는 데 주력했으나 물가인상, 부동산투기 등에 대해선한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정 고문은 소비심리 회복과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 주가상승 등 각종 경제지표를 상세히 소개한 뒤 "이는 개혁의 아픔을 꿋꿋하게 견뎌낸 근로자와 경영자, 그리고 정책담당자 등 우리 모두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경제개혁이 여기서 그쳐선 안된다"며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촉구하고공기업 경영혁신을 통한 공공요금 인상요인 흡수 등 물가안정책과 지방경제 활성화,공적자금 회수노력, 성숙한 노사문화 정착 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반해 박 대행은 정부가 양대선거를 앞두고 `돈풀기식' 경기부양책을 동원,재정지출 과다 팽창, 부동산.주식시장 과열, 가계대출 급증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사상 최악의 빈부격차로 중산층이 붕괴하고 서민이 몰락하는 고통은 전적으로정부가 추진한 졸속행정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당은 실업문제 해소를 위한 `새 출발'(New Start) 정책을 과감히 펼칠 것이며 주거비와 사교육비 등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대북정책 = 청와대 임동원(林東源) 외교안보통일특보의 대북 특사파견과 대북햇볕정책 등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정 고문은 "임 특사 파견으로 남북관계에 새로운 이정표가 마련됐으나 합의보다중요한 것은 실천과 이행"이라며 "민족이 힘을 합쳐 공동번영의 길로 매진하는 데국론이 갈려선 곤란하다"며 야당의 대승적 협력을 촉구했다. 그는 특히 "햇볕정책에 대해선 외국의 석학들조차 그 이상의 대안이 없다고 평가하는데 야당은 반대만 일삼고 있다"면서 "대안없는 비판을 중지해야 하고 민족문제를 더 이상 정쟁의 도구로 악용해선 안되며, 색깔론과 같은 매카시즘 악령을 불러일으키려는 어떠한 시도도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에 대해 박 대행은 "임 특보의 방북기간 북한의 주적론 철회 요구에 어떤 입장을 피력했는지, 김정일 답방을 위한 대북 퍼주기식 이면 거래는 없었는지, 아리랑축전에 대한 지원합의는 없었는지 많은 의혹을 낳고 있다"면서 "양대선거를 겨냥,대북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면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미 교조화, 화석화된 햇볕정책은 탄력성과 실용성을 잃었다"면서 "현정부는 더 이상 욕심을 부려선 안되며 남은 임기동안 남북간 합의한 사업중 하나라도제대로 매듭지어야 한다"며 금강산 관광지원 등 대북지원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기타 = 정 고문은 최근의 빈부격차 확대현상에 우려를 표명하고 "경제적 약자층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다"며 사회안전망 구축과 기초생활보장, 고용보험 확대, 고용창출, 주거안정 등을 약속했다. 박 대행은 국가기관의 도.감청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우리 당 지도자의경우 일상적인 도청.감청과 계좌 추적에 시달리고 있으며 본인은 물론 가족, 친인척까지 일거수 일투족을 철저히 감시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은 이 전 총재의 `빌라문제'가 도.감청을 막기위한 고육지책의 일환인 측면도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minchol@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민철 황정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