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의 탈(脫) 중국 길은 치밀하고도 은밀하게 진행됐다.


이들이 주중 스페인 대사관을 나선 것은 15일 오후 1시10분(이하 현지시간).


이들이 경비원의 몸을 밀치고 대사관에 진입한 지 불과 27시간여 만이다.


지난해 장길수군 가족이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베이징 사무소에 들어간 지 4일 만에 출국한 것과 비교하면 속전속결로 이뤄진 셈이다.


○…탈북자 일행은 이날 외교관 번호판을 단 미니밴 3대에 나눠 타고 대사관을 빠져 나왔다.


그 뒤를 승용차 2대가 따랐다.


차량은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는 대로를 피해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온 후 공항고속도로를 타고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으로 향했다.


스페인 대사관 정문 앞 대로변에 진을 치고 있던 취재진들은 이들이 빠져 나간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공항고속도로에서부터 따라붙기 시작했으나 허사였다.


그들은 베이징 서우두공항에서도 철저한 보안 속에 출국수속을 밟았다.


일반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특별 '노선'을 거쳐 오후 2시45분께 필리핀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베이징 서우두 공항을 떠난 탈북자들은 중국 푸젠성 샤먼 공항을 거쳐 밤 10시께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즉시 공항내 격리된 장소에 마련된 숙소로 이동했으며,취재진의 접근은 철저히 차단됐다.


한편 탈북자들의 서울행 시기를 놓고 우리 정부는 '17일', 필리핀측은 '16일'을 주장해 팽팽히 맞섰으나 필리핀 정부의 입장이 고려돼 16일로 최종 결정됐다.


○…이에 앞서 주룽지(朱鎔基) 중국 국무원 총리는 이날 오전 이들 탈북자 25명의 석방을 시사했다.


주 총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 5차회의 폐막을 맞아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이들 문제는 법에 따라 처리될 것이며 곧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석방 가능성을 내비쳤다.


○…정부는 탈북자 25명이 무사히 제3국으로 떠난 데 대해 외교 경로를 통해 중국과 스페인 양국 정부에 사의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통상부 이태식 차관보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 정부는 스페인 중국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측과 교섭을 진행해 왔다"고 밝히고 "본인들의 의사와 인도적 고려,국제 법규 및 관례에 따른 신중한 처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홍영식 기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