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희 전 국세청차장은 3년6개월만에 처음으로 19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나 행색이 꽤 남루해 도피 생활의 어려움을 짐작케 했다. 양 손을 뒤로 돌려 수갑에 묶인 채 건장한 무장 연방 수사관 두 명에게 이끌려 법정에 들어선 이씨는 검은 뿔테 안경에 깃 없는 베이지색 얇은 스웨터, 낡은 회색면 트레이닝 바지, 굽 없는 회색 가죽신에 맨발 차림이었으며 머리를 단정하게 빗기는 했으나 항상 기름을 발라 반듯하게 넘겼던 예전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이씨의 차림으로 미뤄 체포 당시의 상황이 매우 황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씨의 가족이 옷 등을 차입했으나 미처 전달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이씨는 법정에 들어서면서 방청석에 한국 기자가 20여명이 몰려 온 것을 보고 잠시 놀란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으나 이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목례를 보냈고 방청석의 취재진을 돌아 보며 두 손을 맞잡아 위로 치켜 드는 등 자신감을 내보이려고 등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수사관이 수갑을 풀어 주고 자리를 안내하자 "고맙다(Thank You)"라고 영어로 말한 뒤 통역으로 나온 수전 김(그랜드 래피즈 교민)씨와 악수를 나눈 뒤 변호인들과 귓속말을 나눴다. 그는 조지프 스티브 판사가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자 '이석희'라고 정확히 불러 달라고 요구했으나 스티브 판사가 "잘 안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여전히 틀리게 발음해 법정 안에는 작은 웃음이 일기도 했다. 그는 약 25분동안 법정에 머무는 동안 별다른 의견을 밝히지 않았으며 퇴정하면서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작은 목소리로 "형님과 상의하세요"라고 말해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 이씨의 신병 인도재판은 미시간주 제2의 도시인 인구 40만명의 그랜드 래피즈에서도 화제거리로 등장해 연일 현지 신문과 방송에 소개되고 있다고 교민들이 전했다. 첫 심리가 열린 19일 '그랜드 래피즈 프레스'라는 지방 신문의 기자는 워싱턴과 뉴욕 등에서 몰려든 한국 기자들을 상대로 이씨의 혐의 내용, 재판 결과가 한국 정치에 미칠 영향 등을 물으며 취재에 열을 올렸다. 자신을 그랜드 래피즈 한인회장이라고 소개한 김관준이라는 교민은 이번 사건에 대해 현지 TV와 인터뷰를 가졌다고 밝혔다. 그랜드 래피즈에 있는 미시간주 서부 연방지방법원 관계자들은 난데 없이 한국기자들이 몰려들자 어리둥절한 표정들을 지으면서도 '한국으로서는 매우 큰 일'이라고 느낀 듯 비교적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한편 그랜드 래피즈의 한국 교민 6천명 가운데 한 명으로 이날 법정에서 통역을 맡은 수전 김씨는 기자들이 질문하자 "너무 차원 높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며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 이씨는 방문 학자(visiting scholar) 등에게 발급되는 J1 비자를 갖고 있으므로 합법적인 신분으로 미국에 머물고 있다고 이씨측이 밝혔으나 변호인단은 물론 가족으로는 유일하게 법정에 나온 형 이명희씨조차 그가 다닌다는 센트럴 미시간대학이 어떤 곳이냐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의아심을 자아냈다. 변호인단은 이씨가 연구를 계속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으나 이명희씨는 사진, 도자기 등 '문화 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이씨는 체류 신분 유지목적으로 대학에 적을 두고 있다는 추측을 불러 일으켰다. 당초 이씨의 부인 정영희씨가 켄트 카운티 교도소로 이씨를 찾은 것으로 TV 등에 소개됐으나 사실은 부인이 아니라 이씨의 처남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혼란은 공교롭게 처남댁의 이름도 정영희인 데서 비롯된 것으로 원래 이름은 손영희이지만 남편(정영석)의 성을 따르는 미국 관습에 따라 정영희로 불리고 있다는 것. 이씨의 부인 정영희씨는 그랜드 래피즈까지는 오지 않았으나 어디에 있는 지는 즉각 알려지지 않고 있다. ○... 이씨가 수감돼 있는 켄트 카운티 교도소는 1992년 설립된 비교적 최신 교정 시설로 수용 능력이 1천명을 약간 넘지만 현재 수용 인원이 1천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씨를 포함해 한국인 수감자들도 일부 있다는 게 교도소 관계자의 설명. 이 관계자는 이씨 변호인측의 요구로 가족 이외에는 면회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연휴가 시작된 다음에 체포됐기 때문에 그랜드 래피즈에서 약 90㎞ 떨어진 연방 교도소가 아니라 카운티 교도소에 임시 수감돼 있으나 변호인단측은 접견에편리하다는 이유로 카운티 교도소에 계속 수감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그랜드 래피즈(美미시간州)=연합뉴스) 이도선 특파원 yd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