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돼도 똑같을게 뻔한데 뭐하러 투표소에 갑니까"


서울 동대문을,구로을,강원 강릉 등 3개 지역 재·보궐선거 투표일인 25일.유권자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싸늘했다.


선거구 곳곳에서 '이용호 게이트''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의혹' 등 최근 정치권의 정쟁 및 비리에 대한 유권자의 냉소와 불만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동대문구 답십리동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순대씨(47)는 "뽑아주면 매일 싸움질인데 찍을 마음이 어떻게 나겠느냐"며 투표소를 그대로 지나쳤다.


구로6동에 사는 자영업자 박영숙씨(50)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마음에 들게 하는 일이 없다"며 "투표할 마음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신도림동에 사는 박모씨(58)는 "대학 나온 아들이 여태 취직을 못할 정도로 경제가 엉망진창인데 예쁜게 뭐 있다고 투표하러 가겠느냐"며 "정치인들이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농동에 사는 회사원 박모씨(33)는 투표 의사를 묻는 질문에 "국민을 들러리로 만드는 선거는 싫다"며 손부터 내저었다.


투표소에 줄을 서 기다리는 유권자도 생각은 비슷했다.


구로6동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추호일씨(68)는 "그래도 뽑긴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오긴 했는데 누구 하나 썩 내키지 않아 착잡하다"고 밝혔다.


이곳에서 사는 주부 이모씨(42)는 "투표야 습관적으로 하긴 하지만 무슨무슨 스캔들 얘기만 나오면 짜증부터 난다"며 "이번 투표를 계기로 의원나리들이 제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고 일침을 놨다.


서울지역 선거관리위원회는 학교와 교회,회사에 투표 협조공문을 보내고 아파트를 돌며 유권자의 권리를 강조하는 안내방송을 내보냈지만 별무효과였다.


아파트 주민이 대부분인 동대문구 전농3동 제2투표구는 출근길 유권자로 잠깐 붐볐으나 오전 8시30분 이후로는 내내 한산했으며 다른 투표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오후 3시 현재 3개 선거구 투표율은 평균 32.8%를 기록,최근 재·보선 투표율 48.8%(99년 구로을·98년 강릉 평균)와 이들 3개 지역의 지난해 4월 총선 당시 평균 투표율 57.2%에 못 미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구 분위기로 볼 때 전체 투표율이 40%를 넘기는 힘들 것 같다"며 "선거전이 상호비방과 인신공격,마타도어(흑색선전),맞고소,폭력,금품살포 시비 등으로 얼룩진데 따른 자업자득"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번 선거기간에 선거법 위반 건수는 75건이나 됐으며 공식 선거운동이 끝난 이날 새벽까지도 흑색선전은 계속됐다.


택시기사 이모씨(34)는 "외환위기 때보다 요즘이 더 어렵다고 말하는 국민이 대부분"이라며 "이런 판국에 유권자들이 정쟁만 일삼는 정치인들에게 곱게 표를 던져줄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