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 총리가 총리직 유임과 자민련행을 놓고 장고끝에 일단 사퇴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DJP)간에 줄다리기 양상이 벌어지면서 '사퇴-유임-사퇴'의 드라마틱한 반전이 계속되고 있다. 그만큼 이 총리의 거취에 정치적 의미가 담겨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DJP 줄다리기=이 총리의 거취는 총리직 사표제출후 이틀간 오락가락하고 있다. DJ는 유임을 설득하고,JP는 자민련 복귀를 요청하고 있어 이 총리는 현재 '샌드위치'상황이다. 청와대측이 선제 공격을 했다. 청와대 한광옥 비서실장과 박지원 정책기획수석은 지난 주말부터 수차례에 걸쳐 이 총리를 만나 DJ의 뜻을 전하며 유임을 설득했다. 따라서 4일 밤에는 거의 유임쪽으로 기우는 듯한 분위기였다. 실제로 이 총리는 그 때까지 유임설을 적극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같은 기류는 이 총리가 5일 새벽 신당동 자택에서 JP를 만난 뒤 급반전됐다. JP의 단호한 반대에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JP가 일본을 떠나기 직전 기자들에게 이 총리를 만난 사실을 전하면서 "아무리 (정치)도의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라지만 지금 거기 남아서 총리할 상황이냐"고 언급한 게 이를 뒷받침한다. 이에 한 실장이 서둘러 총리공관으로 이 총리를 방문,마지막 설득을 벌이면서 다시 유임얘기가 나왔다. 이 총리는 한 실장과 만난 직후 장애인부모대회 행사장에서 "이게 총리로서 마지막 사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가,행사가 끝난 후에는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자민련 소속 김용채 건설교통부 장관이 이 총리를 면담한후 "JP뜻에 따르기로 했다"고 전해 이 총리가 일단 자민련 복귀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관측된다. ◇이 총리 왜 고심하나=현실적 실리와 JP와의 신의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상황에서 일단 후자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JP그늘 아래 제2야당에 몸담고 있는 것보다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속에서 여권의 울타리에 안주하며 DJP의 연결고리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경우 여권의 중부권 주자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막판까지 총리직 유지에 무게중심을 두어왔다. 총리자리에 집착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총리직을 택할 경우 신의를 저버렸다는 비판론이 일게 자명하고 그렇게되면 도덕성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게다가 야당의 집중포화를 받을 게 뻔한 데다 여권내에서 단기필마로 입지를 구축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같은 이해득실 때문에 이 총리는 끝까지 자신의 거취를 직접 표명하기보다 내심 DJP가 조정해줄 것을 바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 총리가 "아무말도 하지 않겠다"며 입장표명을 계속 유보하고 있는 것도 이런 뜻의 반영인 듯하다. 이재창·김병일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