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사가 30일 공개한 ''북한적십자회의 생사·주소 확인 회보서''에서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의 생존을 확인한 남측 이산가족들은 비록 명단뿐이지만 50년 만에 전해 온 ''안부''를 듣고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오매불망 그리던 가족이 살아있음을 확인한 데다 오는 3월15일에는 서신을 교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들은 지난 세월 응어리졌던 그리움을 눈물로 쏟아냈다.

<>…"북녘 하늘 아래 내 딸이 살아있기만을 부처님전에 합장 또 합장했습니다"

북에 두고 온 큰딸 생각으로 지난 50년 동안 눈물 마를 날이 없었던 1백2세의 최우성(인천시 부평동) 할머니는 딸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최 할머니는 평양에 큰딸 박순옥(62)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순간에도 부평의 보각사에서 딸의 생존을 기원하며 부처님에게 기원을 올리고 있었다.

지난 5년간 딸의 안위를 위해 꾸준히 기도하던 그대로였다.

평양에 살다가 한국전쟁을 맞은 최 할머니는 1·4후퇴 때 남편이 친척집에 간 사이 대동강이 끊긴다는 소식을 듣고 6남매 중 5남매만을 데리고 대동강 쪽배로 피란길에 올랐다.

최 할머니는 "평양을 떠나기 전 남편에게 편지를 보거든 빨리 피란길에 오르라는 내용의 글을 남겼지.그것이 마지막이었어"라고 회상했다.

최 할머니는 전쟁 후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꾸렸고 억척스럽게 포목점을 마련,다섯남매를 홀로 키웠다.

<>…53년 휴전협정체결 이후 남쪽을 선택했던 반공포로 허병식(83·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할아버지도 80대 노인이 돼서야 33세에 헤어진 아내와 딸들의 생사를 확인했다.

허 할아버지는 생이별 51년 만에 북의 아내 김계량(79·평북 삭주군 삭주읍)씨와 두 딸의 생존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허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두달 뒤인 50년 8월 임신 4개월째인 아내,여덟살난 딸을 뒤로 한 채 인민군에 강제 징집됐다.

당시 허 할아버지의 나이 33세.

낙동강 전선에서 후퇴하던 중 국군에 투항한 허 할아버지는 거제포로수용소에 수용됐다.

이후 53년 휴전협정이 맺어지고 남과 북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혈육과 찢어지는 아픔을 감내하면서 남쪽을 선택했다.

<>…여동생(67)이 생존해있다는 것을 확인한 강진선(76·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할아버지는 "기독교 집안이어서 핍박을 많이 받았을텐데 정선이가 평양에 살고 있다니 시집을 잘 간 모양"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강 할아버지는"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장유택 기자 chang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