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 다 안다"

50년만에 서울의 동생을 만나러 온 임순응(65)씨는 말못하는 동생 준응(64)씨를 위로했다.

네살 때 길가에 버려진 참외껍질을 잘못 먹어 열병을 앓다 아홉살 때부터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된 준응씨.

꿈속의 형을 눈앞에 두고도 어쩔줄 몰라 담배만 피워대자 형이 동생의 애절한 마음을 읽은 것이다.

세월의 장벽과 신체적 장애는 이들 형제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때 인민군에 입대하기 싫어 홀로 남하한 석만길(84)씨는 아내와 네명의 자녀들에게 연신 "미안할뿐이지…"라며 사죄했다.

50년을 수절하며 기다려 온 김필화(68)·유순이(70)씨는 재혼한 남편들에게 "어찌 당신탓만이냐"며 운명탓으로 돌렸다.

재회의 벅찬 기쁨에 이산가족들은 반백년간 쌓인 회한의 벽을 허물고 서로에게 먼저 다가갔다.

부둥켜안고 어루만지는 혈육간에는 한치의 틈도 없는 듯했다.

그러나 ''체제''와 ''이념''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은 무서우리만치 차가웠다.

감격과 눈물이 한반도를 뒤덮던 시각, 북측은 장충식 한적 총재의 잘못(?)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언행이 잘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관계자)

"일부에서 방문단 교환사업에 제동을 거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

8·15 1차상봉 때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장군님의 은덕'' 운운이 이번에도 재연됐다.

"국정원 직원 아니냐""<><>일보 기자면 혼내주려 했다"며 북측에 비협조적(?)인 특정 기관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남측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이 목격됐다.

잠실 롯데월드호텔 프레스센터에 마련된 대형TV는 ''장군님''을 칭송하는 북측 가족들 얘기만 나오면 서둘러 중계화면을 바꿨다.

남측의 한 이산가족은 "무슨 사상에 젖은 때문인지 오빠가 별로 기뻐하지 않는 것 같더라.다시는 보고싶지 않다"는 눈물겨운 고백을 했다.

50년의 세월이 왜곡시킨 ''가슴따로 머리따로''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김병일 정치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