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을 하루 앞둔 1일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은 서울 평창동 북악파크텔에 숙소를 정하고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을 뜬 눈으로 보냈다.

젊음을 묻은 남녘 땅을 떠나는 아쉬움과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북의 가족들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특히 남한에 가족을 두고 북으로 떠나야 하는 장기수들은 또다른 이산의 아픔으로 가슴저려했다.

비전향 장기수 신인영(71·서울 관악구 봉천7동)씨는 평생 꿈꾸던 북한으로 돌아가는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가슴이 메어진다.

32년 동안 자신의 옥바라지로 허리가 굽은 노모 고봉희(93)씨와 영영 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저만 북으로 가면 어머니와 저는 또 다른 이산가족이 됩니다.

아흔이 넘은 늙은 어머니와 생이별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슬픕니다"

신씨는 북에 있는 부인 이영화(69)씨와 은희(45) 남철(41)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막내 등 세자녀를 곧 만난다는 설렘속에서도 이같은 현실이 안타까워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특히 어머니 고씨가 "북에 있는 손자가 보고 싶으니 같이 가자"고 조를 때마다 더욱 가슴이 저려온다.

신씨는 정부가 장기수들의 북송을 결정한 직후 통일부및 적십자사 등을 다니며 노모와 함께 북으로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현재로선 방법이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한때 북송을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신씨는 55년간 분단된 조국통일의 물꼬를 트기 위해 결국 북으로 가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신씨는 "곧 이산가족 모두가 남과 북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백렬(81)씨도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비극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아들 한선화(40·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씨는 "아버지와 다시 헤어져야 한다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것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효도인 것 같아 차마 붙잡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한씨는 이별을 하루 앞두고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며 젖은 노안을 몇번이고 바라봤다.

한백렬씨는 "불우한 환경에서도 어엿하게 성장한 자식들을 두고 북으로 떠나는 게 못내 미안하지만 조국통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어렵게 북송을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