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적십자회로부터 통보받은 남측 이산가족방문단 후보 생사확인자 1백38명 명단이 공개된 지 하루가 지난 28일 대한적십자사에는 북측 가족들의 생사를 알아보려는 실향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상봉 후보에서 탈락한 노인들의 항의 방문이 끊이지 않아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한 당국이 풀어야 할 가장 큰 현안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있다.

○…부인 김확실(84)씨의 여동생 숭태(72)씨가 북한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인과 함께 적십자사를 찾은 한국노인게이트볼 동호인연합회 회장 박병엽(91·서울 성동구 응봉동)씨는 "남북노인 게이트볼 교류대회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고향인 평북 자성군에서 정미소와 신문사 지국을 운영하다 지난47년 월남한 박씨는 "시집식구들을 따라 월남해 친정식구들과 헤어진 아내에게 평생 미안했었다"고 털어놨다.

월남 당시 북한에 누이동생 2명을 두고 내려온 박씨는 "동생들에게 피해가 갈지 몰라 상봉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인 김씨는 "여동생이 3명이나 돼 언젠가는 만날 생각에 반지와 목걸이 등 나눠줄 패물을 모아오다가 3년전 이웃들에게 모두 나눠줬다"며 "여동생 1명이 살아있다니 고운 한복을 선물하고 싶다"며 눈물을 훔쳤다.

○…인민군에 동원돼 가족과 생이별한 염대성(78·서울 문정동)씨도 북에 두고온 아내 오채윤(75)씨와 딸 영자(58),아들 영찬(51)씨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고향인 황해도 벽성군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범하게 살던 염씨는 6·25전쟁 때문에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됐다.

전쟁이 터지자 동네 청년들과 함께 인민군에 동원돼 그해 9월 유엔군과 국군에게 붙들려 거제와 논산수용소에서 포로생활을 했다.

염씨는 "국군이 북쪽 지역을 수복하면 가족들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국군에 자원 입대했었다"면서 "하지만 북한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50여년이 흘렀다"고 안타까워했다.

60년대초 재혼한 염씨는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데리고 고생했을 북의 아내가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북에 부모와 아내,아들을 두고온 이시돈(72·서울 은평구 응암4동)씨는 낡은 가족사진과 국가유공자 증명서 등을 적십자 직원들에게 들이밀며 상봉후보에서 탈락한 것에 대해 거칠게 항의했다.

이씨는 "전날 TV를 통해 명단이 공개된 것을 보다가 혈압이 올라 쓰러져 주사를 맞았다"면서 "50,60대도 4백명 후보자 명단에 올라있는데 70세가 넘은 나는 왜 떨어졌느냐"고 따졌다.

그는 "참전용사로서 국가유공자인 사람을 뽑지 않고 엉뚱한 사람을 후보명단에 올려놓은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흥분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