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컴퓨터의 최신 동향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중앙처리장치 모니터 모뎀 인터넷접속 등 컴퓨터 기능을 하나하나 물어가며 자신의 의견을 얘기했습니다"

베이징(북경)서부 첨단산업단지인 중관춘(중관촌)에 자리잡은 컴퓨터업체 롄샹(연상)의 고위 인사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김 위원장의 렌샹 방문을 지켜본 그는 "김 위원장이 그동안 접견했던 많은 선진국 외국인사와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며 "그의 자신감이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이번 극비 중국방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베이징의 실리콘밸리"로 통하는 중관춘 방문이다.

그는 왜 2박3일의 짧은 일정속에서도 중관춘에 들렀을까.

외교소식통들은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의 경제개발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한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피어나고 있는 "지식경제"를 북한에 접목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해석이다.

더이상 국제경제 흐름에서 낙오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한은 그동안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외면해왔다.

그러나 지난 3월 백남순 외상의 중국방문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다롄(대련)경제개발구를 방문,단지 운영상황을 꼼꼼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다롄단지내 한국기업들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중국의 시장경제에 대한 북한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김 위원장의 중관춘 방문은 백 외상이 보여준 개방의지를 더 확연히 보여준 것이다.

오랫동안 중국을 연구해온 인민일보의 한 기자는 "김정일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사망에 따른 내부 정리(단속)를 끝내고 이제 경제 회생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및 남북정상회담은 이 같은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그는 또 "김 위원장이 경제회생을 위해 중국을 지원세력으로 업고,한국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중관춘에서 "경제난 해결을 위해 외부세력을 끌어들이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롄샹 방문에서 "북한 기술자를 받아들여 교육시킬 뜻이 없는가"라고 묻기도 했단다.

그의 개방의지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더 구체적으로 표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