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전당대회가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총재 경선은 이회창 총재에게 김덕룡 부총재와 5선의 강삼재 의원,그리고 3선의 손학규 의원 등 비주류 세 사람이 도전하는 "4파전" 양상이다.

7명을 선출하는 부총재 경선에는 김진재(5선) 강재섭(4선) 이상득(4선) 이부영(3선) 박근혜(재선) 등 15명 정도가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진짜 볼거리는 총재 경선이 아니라 부총재 경선이라고들 한다.

대의원들이 "2인 연기명"으로 뽑는 부총재 경선은 혼전 양상인 반면 총재 경선은 사실상 승패가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지난 총선의 이른바 "개혁공천"을 통해 대권 가도에 장애물이 될 수 있는 비주류 중진들을 한칼에 날려버리고 지구당 위원장의 80% 이상을 장악했다고 하는 만큼 이 총재의 경선 승리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 총재는 경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경우 한나라당의 다음 대선 후보로서 지위를 확고히 할 것이다.

그런데 관전하는 사람의 심사가 별로 편치 않은 것은 어쩐 일일까? 아마도 앞뒤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이회창 총재의 처신 때문일 것이다.

총재 경선 출마를 선언한 강삼재 의원은 지난 3일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이 총재의 총재직 사퇴를 주장했다.

"5.31 총재경선을 앞두고 당지도부가 앞장서 불공정한 경선을 조장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며 공정경선 보장을 위한 선결조치를 엄중 요구한다.

특히 출마 예정자인 이회창 총재는 즉각 현직을 사퇴하고,중립적 총재권한 대행체제로 경선을 관리토록 해야 한다"는게 그의 주장 요지다.

김덕룡 부총재도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중립적 인사로 당직을 개편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이 총재측의 답변은 "16대 원구성 협상,남북정상회담 대처 등 중요한 현안을 두고 전당대회를 이유 삼아 총재직을 내놓으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이며 야당 역사에도 없었던 일이다"였다.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이 총재가 취한 조처는 하순봉 사무총장이 부총재 경선에 나선 것을 고려하여 민관식 고문을 위원장으로 하는 선거관리위원회를 만든 것 뿐이다.

나는 이총재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남에게는 당적이탈을 요구하면서 자기는 똑같은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대해서는 한마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총재는 검찰이 이른바 "김대중 비자금" 수사를 대선 후까지 유보하기로 한 것을 비난하면서 지난 97년 10월 22일 신한국당 명예총재였던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다.

"우리 당의 명예총재로 계신 김 대통령께서 당적을 떠나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번 대통령선거를 관리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 이 총재는 또 16대 국회의원 총선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올 1월 5일 한나라당 총재단과 주요당직자 연석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당적 이탈을 강력히 요구했다.

"김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여러가지 좋은 이야기를 했으나 끝에 가서 민주당의 창당을 선전하고 국민에게 약속한 모든 것을 신당활동을 통해 이루어 나가겠다고 한 것은 국가의 수반으로서 취할 입장이 아니다.

대통령은 여당의 당적을 떠나야 한다"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한 대통령의 당적 이탈 요구"가 그 자체로 옳다거나 옳지 않다고 분명하게 잘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가지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남에게 공개적으로 그렇게 요구를 한 사람이라면, 자기가 그런 자리에 앉을 경우 남이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렇게 해야 앞뒤가 맞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총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더욱이 남의 선거를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총재 후보로 출마하면서도 말이다.

총선 때는 장관들의 지방나들이를 불법 선거운동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했던 분이 버젓이 총재 자격으로 지방 나들이를 가서 대의원들을 만난다.

"대쪽 판사"의 이미지를 가졌던 이 총재가 내세웠던 "아름다운 원칙"은 어디로 갔나.

원래 그런 것이 있기나 한 것인가.

혹시 이 총재는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예외 없는 원칙은 없으며 나는 언제나 그 예외에 속한다"

시사평론가/성공회대겸임교수 denkmal@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