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이 총선 정국을 강타했다.

접전지역에서는 후보자 사이의 우열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기피했다는 의혹은 한국전쟁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겼던 노년세대는 물론이요 귀중한 젊음의 한 토막을 잘라 바쳤던 젊은 남자들과 그 가족의 가슴에 분노의 불길을 일으키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국방의 의무는 정말로 신성한 것인가?

이 "불경스러운 질문"에 대한 이론적 대답은 명료하다.

조금 과장된 수사이긴 하지만 공동체의 안전을 도모하는데 드는 희생을 모두가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다는 점에서 그것은 신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국방의 의무를 실제로도 "신성함"이라는 수사에 걸맞게 운영해 왔는가?

그렇게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두 가지 측면에서 더럽혔다.

하나는 병역비리다.

"신의 아들"은 면제, "인간의 아들"은 방위, 그리고 오직 "어둠의 자식들"만 현역으로 입대한다는 속설은 분명 과장된 것이다.

부자와 권력자들 가운데 아들을 다른 사람과 똑같은 조건 아래 입대시킨 이들은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그들도 다른 부자와 권력자들이 갖가지 불법과 편법을 동원하여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더럽히는 풍토를 바로잡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국방의 의무는 신성해야 하지만 전혀 신성하지 않은 불만과 저주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병역의무의 정치적 오용이었다.

유신체제 말기의 대학가에는 종종 이런 벽보가 나붙곤 했다.

"김 아무개야, 유신 군대가 너를 부른다!"

당시 유신정권은 독재에 반대하는 "운동권 학생"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킬 목적으로 "강제징집제도"를 도입했는데 학기중에 징집 대상이 된 학생들은 입대를 거부하고 잠적했다.

기관의 독촉을 받은 부모들은 자식이 병역 기피라는 죄에 걸려 "신세를 망치는 꼴"을 보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아들의 선.후배를 찾아다니며 눈물로 호소했다.

그 호소를 외면할 수 없었던 학생들은 잠적한 벗이 연락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렇게 조그만 벽보에 담았다.

5.17 쿠데타와 광주의 대학살을 거쳐 집권했던 전두환의 신군부는 계엄포고령 위반자 등 정치범의 수가 군영창과 경찰서, 교도소의 수용능력을 초과하자 병역미필자만을 골라 군대에 보냈다.

이들의 병적기록표에는 "특수학적 변동자"라는 붉은 도장이 찍혔다.

교련교육을 받은 대학생에게는 당연히 주어야 할 6개월의 복무 단축 혜택을 박탈했고 수시로 보안사로 연행해 옛 동지들의 근황에 대한 첩보수집을 강요했다.

군대를 정치범 수용소로 악용하는 이러한 정책은 10여명의 학생이 의문사를 당한 사실이 사회에 알려진 1985년께까지 대규모로 시행돼거리시위를 하다가 붙잡힌 학생들을 신체검사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신병훈련소에 집어넣기에 이르렀다.

주로 전방에 배치됐던 특수학적 변동자의 수는 1개 사단에 1백명을 훨씬 넘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에게 군 입대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악몽이 되었다.

반독재 학생운동을 하면서 이 악몽을 피한 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실형을 선고받는 젊은이들 뿐이었다.

전두환 정권도 국가보안법 위반자까지 입대시킬 만큼 뻔뻔스럽지는 않았다.

선거의 와중에서 병역면제자들이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그러나 모든 병역면제자를 다 똑같이 취급하는건 부당하다.

돈과 권력을 써서 병역을 면제받은 자는 스스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더럽힌 범죄자다.

그러나 병역 의무를 정치적으로 악용했던 독재권력에 의해 배척당한 병역면제자는 그런 범죄와 관련이 없다.

아무리 기분이 상해도 옥석은 가려야 한다.

시사평론가/성공회대 겸임교수 denkmal@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