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추고 파헤치고 물어뜯는다."

정기국회에 임하는 야당의 태도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본회의 동티모르 파병안 표결에서는 집단 퇴장했다.

상임위원회 별로 진행하는 국정감사에서도 불법 통신감청 문제, 김옥두
국민회의 총재 비서실장 부인의 "보험 스캔들",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의
사법처리 문제 등 크고 작은 모든 쟁점에 대해서 야당 의원들은 정부를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사사건건 반대만 일삼아 온 야당"에 혀를
끌끌 차면서 한나라당에 "건설적 야당"이 되라고 주문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건 비현실적인 요구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건설적 야당"이란 있을 수 없다.

민주주의 본고장인 서유럽 주요 언어에서도 야당을 가리키는 말을 직역하면
"반대당"이 된다.

야당의 임무는 무슨 일이든 일단 반대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민주주의 역사가 이제 겨우 10년 남짓한 우리 나라에서야 말할
나위도 없다.

더러는 이회창 총재의 "독선적 성격"을 거론하고 "초보여당의 난폭운전"
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총재를 맡고 국민회의와 한나라당 의원들이 소속 정당을
맞바꾼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질 리는 없다.

야당이 쟁점마다 더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정부여당 역시 매우 합리적이어서 야당의 대안 즉각 정책에 반영한다
고 하자.

그래서 경제가 살고 사회가 안정되고 정의가 이루어진다면, 그 공로는 결국
야당이 아니라 집권당과 정부의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벌이는 토론을 중계방송하는 것도 아니고, 여야가 시끄럽게
충돌하고 독설과 폭로가 터지지 않는 상임위원회에는 기자들도 잘 들어오지
않는데, 그런 좋은 정책을 제시한 것이 야당 의원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이
어떻게 알 것인가.

집권당의 중대한 실책을 폭로하고 물어뜯는 것 말고는 야당이 자기의 존재를
알릴 방법이 없다.

국민들이 보기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야당이라면 정권을 되찾는 건 아예
불가능하다.

만약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를 거두어 또 한 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면, 지금 여당인 국민회의는 즉각 "전투적 반대당"으로
돌아갈 것이다.

국민들이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풍부한 정보를 얻을수록 국민과
정치는 가까워지고 야당은 정책대안 제시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국방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 등 몇몇 상임위 의원들이
국정감사장에 들어 온 시민단체의 의정활동 모니터 요원들을 내쫓아 버린
것은 일종의 "자해" 행위라고 해야 한다.

특히 이를 주동한 여당의원들은 "반대만 일삼는 야당"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초등학교 성적표에도 석차가 없어졌다"며 그 "자해"를 합리화하는 어느
의원들의 말씀은 듣기조차 민망하다.

평가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게으름을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가와 경쟁이 없어서 모두가 행복하게 지내는 조직이나 사회가
발전하는 일은 없다.

없는 돈과 인력을 힘들게 끌어 모아 조직한 시민단체의 의정감시를 봉쇄하는
국회에서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공개적 평가를 싫어하는 국회의원들은 모쪼록 이번 임기가 끝나면 "음지에서
일하는 조직"으로 직장을 옮기는 것이 좋겠다.

< 시사평론가 denkmal@hitel.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