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8일 김영배 총재권한 대행 체제가 들어선 이후 국민회의에는
바람잘날이 없다.

김 대행 취임 직후 "고관집 도난 사건"이 터졌다.

이어 "호화 옷 로비" "재보선 50억원 살포설" "검찰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등의 악재가 매주 불거져 나오고 있다.

지난 6.3 재선거에서는 여당의 연합공천 후보가 두 선거구에서 모두
참패하는 수모도 겪었다.

물론 각종 악재가 김 대행의 탓만은 아니다.

그러나 김 대행 체제 이후 사건마다 잘못된 해법을 제시, 조기 진화에
실패했다는 "책임론"이 당내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있다.

특별검사제 도입 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지난주초 "파업유도" 의혹이 터지자 국민회의는 한나라당의 특검제도입
주장에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야당이 특검제도입을 계속 고집하면 단독으로 국정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야당과 시민단체는 물론 국민회의 내부에서도 특검제도입을 수용,
단독 국정조사는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자 15일 특검제수용으로 당
방침을 선회했다.

"파업유도" 사건이 미치는 정치적 사회적 파장을 감안할때 여권의 단독
조사는 처음부터 잘못된 발상임을 뒤늦게 시인한 셈이다.

옷로비 의혹이 터졌을때도 그는 당초 "근거없는 풍설"이라 일축하다 대국민
사과를 했고, 김태정 당시 법무장관이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가 또다시
침묵으로 돌아서는등 그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허둥지둥댔다.

최근 정동영 대변인을 급작스럽게 경질하자 그의 인사및 당 운영방침에
문제를 삼는 비판도 일고 있다.

그는 취임 직후 당사 회의실및 국회 총재실을 확장하고 직제에도 없는
비서실 차장직을 도입하려다 사무총장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당내 일각에서 김 대행의 지도력에 회의감을 표시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사무라이"란 별명에 걸맞지 않게 김 대행이 이처럼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김대중 대통령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강하다.

김 대통령에게 당내 분위기를 소신있게 전달, 이를 반영하기보다는 "눈치"를
보는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옷로비 의혹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수차에 걸쳐 말을 바꾸는 그의 태도가
단적인 예이다.

사실 그는 동교동계가 아니면서도 김 대통령으로부터 가장 큰 신임을 받는
인물이다.

그 역시도 정치에 입문한후 단 한차례도 한눈을 팔지않은 "DJ맨"임을
자부하고 있다.

바로 이점이 김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없는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동시에 대통령의 신임을 발판으로 당을 좌지우지 하려는 지적도 많다.

특히 6.3 재선 이후 정국주도권을 한나라당에 완전히 넘겨준 지금 김 대행이
"변신"을 하지 않는한 현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당내 시각이 날로
강해지는 분위기다.

< 김영규 기자 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