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신임 경제수석은 지난 70년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 사무관으로
공직에 들어선후 20년 이상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호남 출신 정통
경제관료.

이후 보건복지부차관과 노동부장관을 역임하는등 비 경제분야에서도 두루
경험을 쌓았다.

정계와 재계에 발이 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한이헌 이석채씨와는 행정고시 동기(7회)로 3-5년
정도 늦게 청와대에 입성하는 셈.

그는 복지부 시절 한.약분쟁과 복지제도 개혁 문제로 장관이 4차례 바뀌는
와중에 실무책임자로 그 공백을 무난히 메우는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노사관계와 관련 "노동계의 발언권이 선진국 수준으로 강해져야 한다"
고 항상 주장해 왔다.

지난 98년 1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 노사정위원회 설치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도 그다.

"친 노동자"임을 주장해온 그의 이같은 지론 덕분에 "국민의 정권"이
들어선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공동 추천으로 노동부장관에 유임됐다.

YS 시절 장관중 유일하게 유임되는 진기록의 장본인이 된것이다.

그는 거시경제론 보다는 분배중심 경제정책에 관심이 높다.

당초 경제기획원 시절에는 "안정적 성장"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지난 90년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으로 "경제 7차 5개년 계획 실무책임직"
을 맡았을때 노사안정과 기업의 설비투자촉진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게
이를 말해 준다.

그러나 노동부와 복지부를 거치면서 "사회복지" 마인드가 강해졌다는게
주위의 설명이다.

때문에 재벌개혁에 대해서는 상당히 적극적이란 평을 받고 있다.

지난 92년 그가 경제기획원을 떠난 것도 재벌개혁을 추진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DJ 정권이 들어선후 이에 대한 그의 신념은 보다 강해졌다는게 경제계의
시각이다.

김대중 대통령과는 전남 목포가 고향이란 점 외에는 별다른 인연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정권 교체시 노동부의 현안을 정연한 논리와 명쾌한 말투로 브리핑해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딴 것으로 알려졌다.

합리적이며 노동부장관 이임식에서 눈물을 보일 정도로 "잔정"도 많은
편이나 부하 직원들이 만들어온 보고서를 일일이 교정 하는 등 지나치게
꼼꼼한게 흠이라면 흠이다.

부인 양인순(48)씨와 1남 1녀.

< 김수섭 기자 soosu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