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 국제기구에 대해 일국의 대통령후보가 협약준수를 약속할수는 업다"

우리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간의 협상을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던
정치권이 3일 분통을 터뜨렸다.

IMF측이 3당정책위의장 명의로 협약준수성명을 발표하겠다는 안을
일언지하에 거부한 직후에 나온 반응이다.

이런 반응은 나라의 위신이나 국민의 자존심을 생각할때 너무나 당연했다.

IMF가 항복을 받으러온 점령군이라도 된단 말인가.

IMF 구제금융은 우리가 거지처럼 동냥을 얻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가 아쉬운 형편이긴 하지만 구제금융을 받고도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면 저들도 온전할 수가 없다.

IMF는 저간의 이런 사정을 드러내지 않고 한국의 유일한 구세주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우리정부도 IMF의 이런 안하무인격인 태도를 자초한 협상자세에 책임을
져야한다.

아무리 급하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부총리가 IMF의 국장하고 머리를 맞대고
협상을 벌일수 있는가.

또 실무협상이 타결됐다 하지만 IMF총재의 재가와 본부 상임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절차를 몰라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를 해프닝으로
만들수 있는가.

지금 의전문제를 따질 때냐는 반문도 있을수 있지만 "경제주권"을 다루는
협상에서 이런 굴욕적인 태도는 결과적으로 나라의 위신과 체통을 흠집내는
행위이다.

더욱이 현대통령을 우롱한 우리측 협상단이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민들이
그나마 희망의 싹을 찾으려는 차기 대통령후보의 체통까지 구기려는 IMF의
"준수서약" 요구에 항변 한번 못한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아무튼 분통을 터뜨린 건 잠깐이었다.

정치권으로 날아든 화살에 3당후보들은 서로 다른 방패로 대응했다.

정책위의장간의 협의채널도 있었지만 IMF 대리인이나 되듯 앞장서는
재경원의 각개격파식 접근앞에 산산조각이 났다.

3일도 국치일이었다.

허귀식 < 정치부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4일자).